[명장열전] (11) 최근철 두산중공업 양궁 감독

스포츠계에선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명장 반열에 오르기 어렵다'라는 속설이 있다. 자신의 화려했던 선수 시절에 눈높이가 맞춰져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단점을 들춰내 선수 육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양궁팀 최근철(52) 감독은 이런 격언에서 자유롭다. 그는 고교 1학년 때 늦깎이로 활시위를 잡았고, 선수 시절 내내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의 이력서에는 국가대표 경력이 단 한 줄도 없다.

그렇지만 최 감독은 지도자로 승승장구해 한국 양궁 하면 누구나 알 만한 김보람, 연정기, 이창환 등 숱한 대표 선수를 발굴해 냈다.

꽃샘추위가 찾아왔던 2월 말 두산중공업 양궁장에서 최근철 감독을 만났다.

그는 스스로 '무명 선수 출신'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1979년 진해웅천고(옛 진해종고) 1학년 때 처음 양궁을 접한 최 감독은 경남대 창단 멤버로 입학해 4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지난달 25일 두산중공업 내 양궁장에서 최근철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는 "진해중학교에 다녔는데 운동에 소질이 있고 체격도 커 야구, 럭비, 배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다"면서 "고교 입학 때 제대로 된 운동을 하려고 양궁을 택했는데 전국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적도 있지만, 선수 생활이 화려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울산 중앙여중에서 처음 지도자 생활을 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라는 주위 편견도 많았지만, 그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비록 화려함은 없었지만 꾸준함으로 승부한 그는 중앙여중을 거쳐 경남대와 부산해운대고 등에서 코치로 일했다. 1993년 경남체육회가 양궁팀을 만들면서 코치로 부임했고, 이듬해 1994년 두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중공업 양궁팀이 정식 창단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두산중공업에서는 2001년 감독직에 올라 올해로 14년째 지휘봉을 놓지 않은 장수 감독이다.

주위에서는 최 감독의 장수 비결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용병술을 꼽는다.

그는 "국가대표 출신이 아니라는 주위 편견을 이겨내고자 훈련계획을 일일 단위로 짜는 등 나 스스로 약속을 지키려 애를 썼다"면서 "그런 절박함이 있었기에 좋은 선수를 발굴해 냈고, 전국 어딜 가도 뒤지지 않는 실업 양궁팀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지도자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선수들에게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가갔다. 선수단이라고 해야 코치를 포함해 남자만 5∼6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대회를 앞두고는 사우나를 함께 찾아 선수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양궁에만 몰두하며 한우물만 파자 주위 시선도 달려졌다. 대한양궁협회에서는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최 감독을 남자대표팀 코치로 발탁하기도 했다.

평온한 선수단 분위기와 달리 감독은 철저히 성적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최 감독에게 성적은 절실했다.

그의 절실함이 통했는지 스카우트하는 선수마다 히트를 쳤다. 창단 멤버로 데려온 김보람은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해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 장용호, 오교문과 함께 은메달을 합작했고, 2001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당시 무명에 가깝던 연정기(당시 두산중공업)가 개인전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또 2006년 입단한 이창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2009년 울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최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냈다.

그는 "지도자로선 선수 운이 좋은 편이다. 창단 멤버로 당시 한국체대 졸업반이던 김보람을 영입했는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 팀 인지도를 올려줬고, 이후 연정기, 이창환도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내줬다"며 고마워했다.

그는 선수들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간 단위로 빽빽하게 짠 일정표도 항상 선수단과 함께 이야기하며 훈련 강도를 조절한다.

대부분 실업팀이 1년 단위로 선수와 계약을 맺고 성적에 따라 재계약 여부를 판단하지만, 두산중공업은 다년 계약이 유독 많은 팀이다.

그는 "사람을 중시하는 두산그룹 인재 철학이 양궁팀에도 그대로 접목돼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주는 편"이라며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요구하지 않고, 팀에 녹아들 시간을 주는 게 알려지면서 두산중공업은 남자 실업팀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팀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 스카우트에 있어 인성과 기량을 항상 체크한다. 최 감독은 "선수로서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부족한 인성을 가진 선수는 팀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영입 대상에서 제외한다"며 "양궁계에서 두산중공업이 후한 평가를 받는 것은 기량과 인성을 모두 겸비한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감독은 인터뷰 내내 지도자의 정직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는 정직해야 한다. 기량을 떠나 항상 선수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개인이 아닌 팀을 이끌 수 있다. 잘하는 선수보다는 뒤처진 선수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정직함"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훈련을 실전 이상으로 강조하는 팀 컬러를 가지고 있다.

많은 훈련량보다는 집중력 있는 훈련을 중시하는 최 감독 의도 때문이다.

그는 "훈련을 통해 선수가 자신이 가진 100%의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철저하게 가르친다"며 "훈련 때 자신의 100%를 투자하지 않으면 나쁜 습관이 몸에 배기 때문에 훈련이 고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만의 지도 철학도 소개했다.

최 감독은 '재능기부'와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많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베트남사격연맹과 양궁 선수단의 정기교류를 위해 '베트남사격연맹-두산중공업·두산비나 양궁 교류 협약'을 체결하고 교류 훈련을 시행 중이다.

최 감독은 "두산중공업 선수들이 슈팅 기술, 장비 관리 방법, 체계적인 훈련법 등 양궁훈련 방법을 전하고, 베트남 사격연맹 내 양궁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며 "선수단 내부에서도 반응이 좋아 앞으로도 다양한 재능기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팀이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먼저 두산 가족을 위한 양궁체험을 시작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체험 학습 등 지역 사회에 양궁으로 다가서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서 "특히 양궁은 집중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장애인 재활을 돕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벌써 차기 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그는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2016년과 2020년 두 번의 올림픽이 있는데 다시 한 번 두산중공업 소속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고 싶다"며 "그동안 팀에서 배출한 선수들이 모두 타지역 출신이어서 그런지 다음에는 도내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보람-연정기-이창환 등 한국 남자양궁의 계보를 써내려간 두산중공업에서 어떤 차세대 스타플레이어가 배출될지 도내는 물론 한국 양궁계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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