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서열 외 유전형질에 영향'…크로마틴·음식·환경 등 연구 활발

일란성 쌍둥이는 꼭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키도 달라지고 머리색깔도 달라 지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 왔다. 심지어는 서로 다른 유전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생물의 모든 유전형질은 DNA가 결정 한다고 학교에서 생물 시간에 배워 오지 않았던가?

1990년도 부터 시작되어 2003년까지 약10여년간 선진국들이 힘을 합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여 인간게놈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아버지와 어버니로 부터 각각 23개씩 물려 받은 46개의 염색체를 구성하는 모든 DNA를 1번 부터 마지막 하나까지 세어보았다. 결과로서 인간 DNA의 총합 즉 인간유전체는 약 30억개의 DNA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간에 의미있는 영역들을 유전자라고 부르는데 인간유전체 속에는 약 23,000개의 유전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흐름에 발 맞추어 인간유전체같은 생명체의 정보들을 비커나 시약대신 컴퓨터만을 이용하여 분석하고 연구하는 생물정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 신학문을 통하여 마침내 생명의 신비가 모두 풀 릴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였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이 학문은 지난 세대가 이룰 수 없었던 섬세한 생명정보 비교 분석등 꽤 많은 성과를 올리기는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였던 것과 같은 요술 방망이가 아님이 드러났고 과학자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더 많은 숙제만 던져 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유전학 분야로 돌아가보자. 앞의 예에서 처럼 과학자들은 DNA 정보만으로 유전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여왕벌의 예를 들어보자. 과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여왕벌과 일벌들의 유전자는 같지만 유모벌들이 여왕벌이 될 유충을 하나 골라서 그유충에게는 로얄제리만 먹이고 나머지 일벌유충들에게는 꽃가루와 일반꿀을 먹인다고 한다. 그러면 로얄제리만 먹은 유충은 여왕벌이 되고 나머지는 일벌이 된다고 한다. 서두에 소개한 일란성 쌍둥이의 예와 여왕벌의 예에서 보여진 것 처럼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DNA 염기서열 이외에도 음식이나 환경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유전형질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것이다.

이처럼 생명체의 유전정보 즉 DNA 서열은 변화 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되는 유전형질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후성유전학이라 하며 지난 10년간 놀라운 발전을 이룩 하였다. 음식이나 환경이 유전형질에 영향을 주는 사례들을 많이 발견하였고 심지어는 이렇게 얻어진 유전형질이 유전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특히 지난 몇년간은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 그 동안 생물정보학에 몰렸던 많은 관심들이 후성유전학쪽으로 이동되고 있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수 많은 생명과학 연구분야중에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연구분야 중에 하나이며 앞으로 이분야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연구성과들이 나올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생학자인 워딩턴 (Waddington)이 후성유전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DNA의 전사와 RNA의 번역 및 세포의 신호전달체계를 다루는 분자생물학의 대부분은 후성유전학에 포함 시킬 수 있다. 지금 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후성유전학적 유전자 발현조절 메카니즘에는 'DNA 메틸화' 와 '히스톤 변형', 그리고 '비암호화 RNA를 통한 전사 조절' 등이 있으며, 이는 유전자 발현조절, 염색체의 안정성, 유전자 각인 등의 유전체 기능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DNA 염기 중 하나인 시토신에 메틸기가 붙는 현상을 ‘DNA 메틸화’라고 하는데 이렇게 메틸기가 붙으면 그 DNA 즉 유전자를 인식하는 장치가 작동하는데 방해를 받아 그 유전자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길다란 실같은 구조의 DNA를 감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히스톤'인데 실을 감는 실패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에 메틸기 아세틸기가 붙어 실패가 잘 풀리지 않게 방해를 하는데 이를 '히스톤변형' 이라고 부르며 실패가 풀리지 않게 되면 실패에 감겨있는 유전자 부분은 사용 할 수 없게 된다. 이 처럼 자연은 DNA에 메틸기를 붙히거나 히스톤단백질에 메틸기 등을 붙이 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숨기는 장치를 고안해 두었던 것이었다.

이런 후성유전 현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도서관을 예로 들어 비유적으로 설명해 보면, 이제까지는 도서관의 특징이나 개성을 결정하는것이 서고에 있는 책의 종류에 의해서라고 믿고 있는것과 같다. 하지만 이번 후성유전현상의 결과로 추론해 보면 도서관 개성, 즉 생명체의 유전형질을 결정 짖는 요인은 그 당시 어떤 책(유전자)이 대출 (사용)가능하고 어떤책이 대출 불가능 한가의 분포 혹은 배치가 결정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이나 환경등의 요인이 여러 유전자들을 사용 못하게 하고 어떤 경우는 사용하게 함으로서 같은 유전자를 가진 생물체라고 다른 형질을 보이는 것이다.

고등생물의 염색체 구성을 살펴보면 약 절반이 유전 물질인 DNA이고 나머지 절반은 크로마틴이다. 사람들은 DNA만이 진짜 중요한 유전물질이고 크로마틴은 그저 DNA만 잡아주는 보조기구라고 생각 하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유전자 사용 여부의 결정에 크로마틴도 관여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돌연변이 같은 DNA 변형 없이 얻어진 유전형질이 3대나 6대까지 후손에 전달 될 수 있음을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놀랍지 아니한가? 이런 이유등으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다시 주목 받고 있으며 이제 머지않아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은 유전학을 다시 배워야 할것 같다.

후성유전으로 인한 유전자 발현조절은 암, 치매, 정신분열증, 당뇨,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질병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국제협력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후성유전체분야의 연구를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되며 이러한 연구를 통해 암과 자가면역질환을 포함하는 후성유전학적 질환의 치료제 개발을 통한 다양한 질병의 극복이 가능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벌써 부터 인간후성유전체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신학문에 열광하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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