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인도 선간판 등 모조리 정리…노점들 어시장 내 '약초골목'이동…시민 "깨끗"-"삭막"반응 엇갈려

"절도를 하거나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못사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하려는데 왜 이러는 겁니까."

마산어시장(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동) 주변 노점 단속이 예고된 26일 오전 6시. 이날 단속지역은 합포로변 좌우(흥남종묘사∼수협∼수남상가)였다.

단속 소식에 노점 상인은 전날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장을 찾은 이들은 한참을 서성이다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단속을 집중적으로 하는 차로 쪽은 피해 상가 쪽으로 바짝 붙은 노점 상인들은 준비해온 나물, 생선 등을 주섬주섬 꺼냈다. 어시장 상인들도 단속 소식에 길가로 나와 삼삼오오 단속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로 마산어시장 상인회 관계자들이 연두색 조끼를 입고 단속 사실을 알리며 약초골목에 자리를 마련해놨으니 그쪽으로 옮기라고 알렸다. 몇몇 노점 상인들은 "갈 데도 없는데 어데로 가야 하노"라면서도 좌판을 정리하고 마산어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26일 창원시 마산어시장 주변 노점 단속 현장에서 상인과 구청 직원이 충돌하고 있다. /김해수 기자

오전 6시 30분이 되자 주황색 조끼를 입은 마산합포구청 직원 170여 명이 흥남종묘사부터 단속을 시작했다. 노점 상인이 눈치를 보자 구청 직원은 "여기서 장사하면 안 됩니다. 정리 안 하면 다 가져갑니다"며 노점 상인을 쫓기 시작했다.

1분 남짓 걸었을까. 노점 상인이 물건을 치우지 않자 구청 직원들은 좌판에 있는 나물, 상자, 의자 등을 트럭에 실었다. 충돌의 시작이었다.

도롯가 상점에서 쌓아둔 짐도 단속 대상이었다. 한 과일 가게에서는 구청 직원이 인도에 놔둔 과일 상자를 옮기라고 하자 흥분한 상인이 직원에게 욕설하기도 했다. 구청 직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과일 상자를 트럭으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가벼운 몸싸움도 있었다.

문을 닫은 상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셔터가 내려져 있어도 인도를 침범한 선간판, 현수막, 가스통 등은 모조리 트럭으로 옮겨졌다.

이례적인 강력 단속에 노점 상인들은 먼발치서 다가오는 구청 직원을 보며 서둘러 철수했고 인도에 물건을 쌓아뒀던 상점 상인들도 급하게 물건을 가게 안으로 옮겼다. 미처 다 옮기지 못한 물건들은 구청 트럭을 향했다.

절반쯤 갔을 때 이번에는 상점에 비를 막는 비닐 막이 문제가 됐다. 소방시설을 가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상점 주인은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이 새 전기를 쓸 수 없다며 호소했지만 구청 직원들은 소방 안전을 내세우며 철거하려 했다. 그때 또 다른 상점 관계자가 직접 철거하겠다며 손수 비닐 막을 잘라냈다.

단속을 벌이며 상인과 구청 직원 사이에 몇 번의 고성과 몸싸움이 오갔다. 그럴 때마다 이를 지켜보던 상인, 구청 직원, 행인들은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 상인은 "안타깝고 살이 떨려서 못 쳐다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전 8시 마산합포구 직원들은 1시간 30분 만에 약 700m가 되는 마산어시장 길 단속을 끝내고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수남상가 쪽에는 노점 상인이 없어 큰 충돌 없이 약 15분 만에 단속을 끝냈다.

한 차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깨끗했다. 이 길이 원래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겨운 새해 인사도, 웃음소리도, 손님도 없었다.

마산어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노점 단속으로 상권이 더 나빠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단골이 전화 와서 오늘 단속이 있으니 고기를 직접 배달해달라고 했다"며 "평소에는 생선을 사러 왔다가 채소도 함께 사갔는데 채소는 다른 곳에서 주문해야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상인 생각은 달랐다. 한 어시장 상인은 "노점 상인들은 어시장 안쪽으로 오면 장사가 안될 거라고 하는데 자릿세를 내는 우리도 장사하고 있다"며 "특히 어시장 안에 가게가 있으면서 인도까지 독점하려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강력한 단속을 환영했다.

시민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삭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사는 정영미(56) 씨는 "우선 길이 넓어져서 좋다"며 "구청에서 단속 의지를 갖추고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창원시 성산구에서 온 배이임(48) 씨는 "걷기에는 편리해졌지만 너무 깨끗하니 시장 분위기도 안 나고 이상하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약초골목으로 옮겨온 노점 상인들은 마산어시장 상인회에서 마련한 곳에 앉았지만 낯선 자리와 시선에 쉽사리 짐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