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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계급해방 꿈꾼 경남 최초 영화감독

[동전]경남 최초 영화감독 '강호' 조명하는 논문 나와

이미지 기자 image@idomin.com 2015년 02월 23일 월요일

경남 최초 영화감독인 강호 감독을 집중 조명한 논문(미발표)이 나왔습니다. 이성철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가 일제강점기 도내 초창기 영화사를 정리해 공개했습니다. 경남 영화사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주요한 자료로 주목됩니다.

◇강호 감독은 누구 = 이성철 교수가 쓴 '일제강점기의 조선영화: 1920∼30년대 경남지역 강호(姜湖) 감독의 활동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강호(1908∼1984) 감독은 창원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곡리 출신이다.

강호 감독의 본명은 강윤희다. 독고성, 한자 이름을 달리 쓴 강호(姜虎)라는 별칭을 썼는데 그중 강호(姜湖)를 널리 사용했다.

강호 감독은 13세에 일본 교토로 유학을 떠난다.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일본미술전문학교 전문부 졸업인지 교토예술대학 졸업인지 분명치 않다. 그의 그림 활동은 영화와 연극무대 미술 분야로 이어진다.

조선영화예술협회 시절 모습으로 추정되는 강호 감독. /이성철 교수

강호 감독은 1927년 조선영화예술협회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소속원으로 참여하며 영화 공부와 작품 활동에 나선다. 이때 함께한 사람이 이종명, 윤기정, 김유영 등이다.

카프 영화부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유랑>, <혼가>, <암로>, <화륜>, <지하촌>으로 총 5편이다. 이 중 <암로>와 <지하촌>을 강호 감독이 연출했다.

1928년 연출작 <암로>는 황폐된 조선 농촌과 농민의 실상을 그린 영화로 극장에서 상영됐다.

<지하촌>은 1931년 만들어졌지만 일제 경찰의 검열에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지하촌>의 한 장면.

강호 감독은 경남 최초 영화감독이면서 카프 영화사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 미술전공분야를 발휘해 노동운동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1930년 5월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에 참가해 전단과 벽보를 제작했다.

강호 감독은 1933년 영화비평 활동을 활발히 한다. 조선중앙일보에 '조선영화운동의 신방침(1)∼(8)'을 연재했고 조선일보에는 '제작상영활동과 조직활동을 위하야'를 썼다.

강호 감독의 1946년 이후 행적은 그의 월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평양미술대학에서 영화 관련 부교수로 일하고 영화와 무대 미술 관련 책을 출간했다고 전해진다.

◇오랜 역사에 비해 전무한 지역 영화사 연구 = 이 교수의 논문은 1920∼1930년대 경남 영화사 연구로, 1960년대에 이르는 경남지역 초창기 영화사에 대한 연구 발판을 마련해준다.

창원에는 1952년부터 미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가 설치돼 15년간 활동했다. 이보다 앞서 1910년 마산에 처음으로 극장이 문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경남은 영화 관련 역사가 비교적 오래되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경남 영화사에 대한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은 없다.

그나마 마산문화원 부설 영화자료관에서 희귀 영화 자료를 볼 수 있다.

강호 감독이 1969년에 직접 그린 자화상.

창원문화재단은 영화사 관련 사업이 없다고 밝혔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영상물제작지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로케이션 촬영 등을 지원하지만 영화 사료를 모으거나 관련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관계자는 "다만 올해 말 <경상남도사>를 편찬하다. 3편 문화예술에 영화 부문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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