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10) 오윤경 창원대 탁구 코치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대부분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등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국가대표로 대변하는 우수 선수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느냐가 중요한 평가기준이지만, 국내에서는 우승 횟수로 지도자를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지방대학 지도자는 명성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고교 스타들이 수도권 소재 명문대학을 선호하는 현실에서 B급 선수들을 뽑아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기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이라는 한계와 고교 랭킹 안에 드는 A급 선수를 스카우트하지 못하는 핸디캡에도 몇 년간 전국 정상의 클래스를 유지하는 팀이 있다. 바로 창원대 탁구부다.

지난해 창원대 탁구부는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비롯해, 대통령기, 문화체육관광부기 등 3개 대회에서 단체전을 싹쓸이했다. 탁구는 개인종목이지만, 구성원 전체가 고른 기량을 선보여야 하는 단체전은 그만큼 입상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3번에 걸친 창원대의 단체전 우승은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

B급 선수를 조련해 일류 팀을 만들어낸 비결을 찾으러 창원대 탁구의 조련사 오윤경(43) 코치를 만났다.

오 코치의 2014년은 어느 해보다 특별했다.

지난 12일 창원대 실내체육관에서 오윤경 창원대 탁구 코치가 자신의 지도철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창원대 창단 이후로 대한탁구협회에서 주는 우수단체상을 받았고, 오 코치는 지도자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오 코치는 경남체육회에서 선정하는 경남 최우수지도자로도 뽑혀 겹경사를 누리기도 했다.

오 코치는 "8년 전쯤 대한탁구협회가 주최한 시상식에 갔는데, 수상자들을 바라보며 부러운 생각을 많이 지녔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이 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꿈만 같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부산이 고향인 오 코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환은행에서 실업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되면서 그 길로 제주 탐라대에 입학했다. 대학생으로도 줄곧 라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졸업 후 안산시청 소속으로 전국체전에 출전해 개인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로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는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많은 국제무대에 출전했다.

1998년 열린 세계대학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 준우승을 차지했고,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고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탁구계는 홍순화의 뒤를 이을 차세대 수비형 선수가 나타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우수한 실력에도 그는 번번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출전 문턱에서 좌절했다.

"제가 외골수적인 면이 좀 있어요. 당시 탁구계를 주도하던 분들과는 다른 쪽에 서 있었어요. 물론 1차적인 원인은 제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졌겠지만, 보이지 않는 힘(?)도 작용했다고 봐요."

큰 대회를 앞두고 번번이 대표팀에서 낙마하면서 그는 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맘 때쯤 그에게 싱가포르 대표팀에서 연락이 왔다. 싱가포르로 귀화하면 어떻겠냐는 제의였다.

그쪽에서는 프로 진출 보장과 높은 연봉 등으로 오 코치를 유혹했다.

그는 "솔직히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해외에서 프로 선수로 뛸 수도 있고, 한국 팀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모님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굳이 국적까지 바꿔 국가대표 선수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오 코치는 선수 시절 다하지 못한 배움의 길을 찾아 창원대를 찾았다.

그는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하고자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돌연 2003년 창원대 코치로 부임했다.

그는 "실업팀과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경험한 것을 보다 학문적으로 깨치려고 창원대를 오게 됐는데, 당시 탁구부 코치가 이민을 가게 돼 임시로 팀을 맡았었다"면서 "사실 코치를 이렇게 오래할 것이라고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고 웃었다.

그렇게 창원대 탁구부를 맡은 지 올해로 13년째다. 초보 지도자로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그는 "처음 코치에 부임했을 때는 무조건 잘하고 싶고, 성적을 내고 싶어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고, 경기에서 지면 속앓이도 혼자서 참 많이 했다"며 "몇 년이 지나고 '내가 선수 시절 바랐던 코치는 이런 모습이 아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그때부터 생각을 고쳐먹고 선수들 입장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선수와 지도자가 한 배를 타면서 팀 성적은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최근 4년간 열린 전국체전에서 창원대는 모두 결승에 올라 두 번의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좋은 지도자는 권위적인 지도자나 강압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따뜻하게 선수들을 지도하는 사람"이라며 "권위적인 지도자는 외롭지만 따뜻한 지도자는 항상 웃을 수 있다"는 지도 철학도 소개했다. 또, 오 코치는 바쁜 지도자 생활에도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해 지난 2008년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오 코치는 아직 미혼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엄마로 통한다.

그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엄마의 마음이 선수들을 대하는 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선수들에게 모든 정성을 다 쏟아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창원대 탁구부는 남자부와 여자부 두 팀이 운영 중이지만, 여자팀만 정식 팀으로 인정받는다.

여자선수들은 특기생으로 입학해 각종 혜택을 받지만, 남자 선수들은 일반 학생으로 입학해 등록금도 내야하고 경기가 있을 때면 교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공결처리도 받아야 한다.

오 코치는 "남자 선수들이 이런 부분을 알고 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두 팀을 모두 운영하다 보니 잘 챙겨주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오 코치의 바람은 이른 시일 내에 남자대학부가 정식으로 창단하는 것이다. 그도 남자 선수들에게 "너희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 학교에서 남자대학부를 창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팀이 성적이 좋지 않아 고전하던 시절 그는 선수들에게 '너희가 우승하면 내가 결혼한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그의 공약이 먹혔는지(?) 창원대 탁구부는 오 코치의 폭탄발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덜컥 우승을 해버렸다. 선수들은 우승으로 보답했는 데, 아직 오 코치는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선수들의 결혼 약속을 이행하라는 주문이 부쩍 많아졌다.

그는 올해 새로운 제안 하나를 내걸었다.

"너희가 남녀 동반우승 하면 나 결혼할게."

창원대 탁구부의 남녀 동반우승 소식과 함께 오 코치의 청첩장이 날아들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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