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86) 창원 지산화훼 전수익 사장

졸업시즌으로 꽃 소비가 활발한 2월 화훼농장을 찾았다. 소비가 많은 만큼 시설하우스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많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농장은 내가 생각했던 형형색색의 꽃이 핀 곳이 아니었다. 나를 반긴 것은 튼튼한 줄기를 곧추세운 흰 국화였다.

"왜 흰 국화 농장이라 놀랐습니까?" 뜨악한 표정을 본 농장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대평리 89번지 지산화훼 전수익(62) 사장이다.

◇단아한 자태 인상적 … 장례용으로 인기 = 전수익 사장이 재배하는 흰 국화는 국내 장의용 시장을 차지하는 일본 품종 '신마' 대신 로열티 한 푼 들이지 않는 '수미'라는 국내 육성 품종이다. 경남도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진영돈 박사가 5년 전 개발한 이 품종은 흰색의 단아한 자태가 인상적이어서 장례용으로 아주 인기가 높다.

전 사장은 5200㎡(약 1570평) 시설하우스에서 아내 박둘숙(57) 씨, 근로자 2명과 함께 연간 40t(80만 본)을 생산, 이 중 일본에 10t을 수출하고 나머지 30t은 내수용으로 판매한다. 매출은 연간 2억 원으로, 제 경비를 뺀 순익은 8000만 원 정도 된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서 흰 국화 '수미'를 재배하는 지산화훼 대표 전수익(오른쪽) 씨와 부인 박둘숙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15년간 국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젠 국화 농사만큼은 어딜 내놓아도 자신 있습니다. 우리가 재배하는 국화는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 등 국내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상품입니다."

◇장미 농사 실패 '강소농' 밑거름으로 = 전 사장이 국화 농사를 짓게 된 과정은 어땠을까?

"원래 창원공단에서 직장생활을 했었지요. 근데 나이 40을 넘기면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서서히 직장에서 밀려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직장생활을 접고 동생들과 4년 동안 양계장 자동화 사업을 했는데 재미가 썩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주위에서 화훼농사를 많이 해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됐고, 1998년 귀농했습니다."

귀농한 그는 마을주민 10여 명과 함께 장미를 키웠다. 초기엔 자금이 많이 들어가 서로 보증을 서 농사를 지었단다. 하지만 소규모여서 타지역 장미 재배 농단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결국 2년 만에 모두 1억∼2억 원씩 적자를 보고 접었다. 그 과정에서 5명이 야반도주까지 했단다.

재산을 모두 날린 전 사장은 장미를 접고 국화 재배를 시작했다. 전 사장이 국화를 처음 재배했을 땐 연료비 부담도 적었고, 인건비도 싸 제법 농사 지을 만했단다. 2년 정도 지나자 이젠 여유를 가지며 농사 짓는가 싶었다.

하지만 2003년 전 사장은 또 한 번 좌절했다. 추석 연휴에 경남을 강타한 태풍 '매미' 때문이었다. 태풍은 전 사장의 시설하우스도 덮치고 지나가 그동안 들인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하늘도 참 무심했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자신도 생겼는데 태풍을 만난 겁니다. 물론 농부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순 없지만 주저앉은 시설하우스를 보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다시 일어서야 했다. 꼬박 2개월 동안 쓰러진 골조들을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창원공단에서 일한 경험이 시설하우스 복구에 큰 도움이 됐다. 전 사장이 직접 근로자들을 데리고 작업하다 보니 남들의 3분의 1의 비용인 1억여 원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초보 화훼농 전 사장이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당시 시련은 오늘날 그가 강소농으로 성공하는 좋은 밑거름이 됐다.

◇재배기술 보급에 열중 = 전 사장의 재배기술은 이제 도내에서 국화 재배농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가 생산하는 국화는 이미 국내에서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최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작년에만도 엔저 심화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어 수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전 사장은 상품성을 인정받아 8t을 수출했다. 그렇지만 전 사장은 고민도 많다.

"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국내만 해도 이미 중국에서 우리나라 생산량의 3배 가까운 물량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국화는 저가품이 많은데 국내 화환업자들이 우리가 생산하는 국화가 좋은 줄 알면서도 꺼립니다. 장례식장 등에서 사용하는 꽃인데 굳이 비싼 돈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전 사장은 이를 타개하는 방법은 농민들이 국내 육종 품종인 '수미'를 많이 재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수미' 재배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대돼 수량이 많아지면 중국의 질 낮은 저가품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은 재배기술 보급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국화 재배 단체인 마산국화수출농단 총무이사와 (사)경남절화연구회 수석부회장을 맡아 열심히 재배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아한 자태가 인상적인 국내 육성 품종 '수미'.

전 사장은 기술 전수를 통해 관비 재배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관비 재배란 관행적으로 해오던 농사 짓는 방법에서 탈피해 호스(관)를 통해 국화 포기마다 뿌리 근처에 비료성분이 든 물을 공급함으로써 품질이 우수한 국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데다 잦은 비료 보충으로 토양 속에 있는 특정 양분이 과다해지는 것을 막아 토양오염과 수질오염까지 예방하는 방법이다. 특히 관비 재배는 일손이 적게 들 뿐만 아니라 비료나 농약 살포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전 사장은 경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이상현 박사로부터 이 관비 재배법을 전수하고 주변 화훼 재배 농민들에게 관행 농법 탈피를 강조하고 있다.

◇"운동으로 생각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농사 지을 것 같아" = 전 사장은 국화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로 '마산가고파국화축제'를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올려놓은 것을 꼽는다. 전 사장은 6년째 사무국 일을 하고 있는데 국화를 재배하는 농민으로서 뿌듯할 법도 했다.

"가장으로서 자식들 공부에다 뒷바라지 다 하고 출가시킨 것은 다 국화 농사 덕입니다. 더구나 오로지 농사만 짓는 농부가 아니라 내가 가진 지식을 남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재배기술을 가졌다는 게 보람이지요. 하지만 마산에서 열리는 국화축제를 세계 명품축제로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 내내 궁금한 것이 있었다. 도시에서는 나이 60이면 대부분 현업에서 물러나야 할 나이다. 정년이 없는 농사라고 했지만 언제까지 국화를 재배할지 물었다.

"앞으로 10여 년, 75살이 되면 농사 짓는 일을 그만둘까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요, 그때가 되면 또 10년 더 농사를 짓겠다고 할지 모르죠. 농사를 일로 여기지 않고 운동으로 생각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농사를 짓지 않을까요?"

경남농업기술원 이상현(왼쪽) 박사가 관비 재배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추천 이유>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기술지원단 시설원예 전문가 이상현 박사 = 전수익 강소농은 배드와 토경을 19년차 재배하면서 마산 진동, 진북, 진전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농단을 설립하였고, 또한 강소농 활동을 통한 정보 교류와 지식기반으로 품질 및 생산성 향상 등 각고의 노력을 선도하는 진정한 강소농입니다. 특히 국산 '수미' 품종 재배방법을 토양 검정 및 원수 분석을 통해 관비처방으로 균형 시비를 해 농자재 비용절감(75%), 고품질 생산, 토성 회복, 노력 절감 효과를 낸 지역 핵심 농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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