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위해 신장 내주며 생명 나눔 가치 알아가…장기 이식 단체 출범해 700여 명 후원 이끌어내

퇴근 후 지인들과 모임을 마치고 조용히 집안에 들어섰던 어느 늦은 밤. 어둠 속에서 이불을 더듬으며 몸을 파묻는데 자꾸만 아내가 뒤척인다. 잠결에 팔다리가 쑤신 듯 주무른다. 감기몸살이라도 걸렸는가 싶어 며칠 후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의사 입에서 나온 병명은 다름 아닌 신부전증. 콩팥 두 개 중 한 개가 기능을 완전 상실했단다. 나머지 한 개에 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예기치 못한 질환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지만 야무진 성격인 아내가 알아서 건강을 챙길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2년 후 나머지 콩팥마저 악화됐다.

"집사람이 저 때문에 병을 얻은 것 같아 그저 미안하죠."

남편 정수영(57·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감정이 복받친다.

◇사랑 그리고 나눔 = 1984년부터 14년간 보험회사를 다녔던 정수영 씨는 '보험왕' 타이틀을 8차례나 거머쥐었다. 고객도 수영 씨도 서로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너무 믿었던 탓일까. 고객 한 명이 보증을 서달라 했을 때 선뜻 도장을 찍은 게 화근이었다.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상조회사에서 심기일전 재기를 다지던 수영 씨. 아내 김순선(54) 씨는 그런 그의 곁에서 묵묵히 두 아들의 엄마이자, 맏며느리로서 역할을 다했다. 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와중에도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겼다.

더 많은 장기이식 환자들이 제2의 생일을 맞이하길 기대하는 정수영 씨.

"처음에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다가 점차 발길을 끊었나 봐요. 단돈 1000원이라도 아끼려고 그랬나…. 물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갈수록 몸이 퉁퉁 부어올랐죠. 나머지 콩밭마저 고장이 나 버린 거죠. 의사가 이식만이 살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수영 씨. 자신의 신장 하나를 뚝 떼어 주고 싶었지만, 혈액형과 조직 적합성이 맞지 않았다. 결국 이틀에 한 번 병원을 찾아 혈액투석으로 노폐물을 걸러내야 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장장 5시간 걸리는 작업. 수영 씨는 5년간 오로지 아내에게 맞춰 상조 업무를 봤다. 장례절차를 진행하다가 투석이 끝날 즈음, 상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순선 씨를 데리러 갔다. 대부분 사정을 듣고 기꺼이 이해해줬지만 싫은 소리를 내는 고객도 더러 있었다. 짜증 나고 힘들어도 순선 씨 앞에서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들른 수영 씨. 때마침 홍보활동을 나온 새생명나눔회 자원봉사자에게서 조직이 맞지 않는 남편도 장기 이식을 할 수 있다고 전해 듣는다.

바로 '가족교환이식'. 신장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기증을 희망하는 가족이 직접 이식이 적합하지 않을 경우, 그 가족이 다른 환자에게 기증하고 다른 기증자에게서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다. 프로그램 신청 후 1년 만에 고대하던 수술대에 올랐다.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친 다음 날 수영 씨는 아내가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문틈 사이로 침대에 앉아 물을 벌컥 마시는 순선 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날아갈 듯 기뻤던 그때 기분은 아직도 선명하다.

정수영 씨와 그의 아내 김순선(왼쪽) 씨.

◇환자 가족에서 홍보 활동가로 = 수영 씨는 아내 순선 씨를 6년간 보조하며 장기이식 환자와 그 가족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절감했다.

바로 홍보와 지원. 신장 기증인과 신장 이식인 모임인 새생명나눔회를 2012년 5월, 새생명나눔실천본부로 출범시키며 본격적으로 장기 기증 홍보활동에 뛰어들었다.

동창회, 향우회, 봉사단체 등 소속 단체만 20여 개인 수영 씨는 각종 모임의 사무국장, 총무 직책을 스스로 떠맡았다. 인맥을 조금이라도 넓혀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후원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렇게 1년여간 새생명나눔실천본부 사무국장을 자처하며 발로 뛴 결과 각막, 골수 등 장기기증 희망자 700여 명. 후원자도 700명 가까이에 이르렀다. 후원금은 1인당 평균 1000원. 지난해 간암 환자 등 4명에게 수술비 300만 ~400만 원씩 지원했다.

"신장, 간 이식 수술하는 데 1600만~2400만 원이 드는데 반해 후원은 턱없이 모자라요. 단체에서 수술비 모금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정부 차원에서 지원책을 강구했으면 좋겠어요"

순선 씨가 신부전증으로 고생할 때에도 친구,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수영 씨. 그가 '아내한테 장기 이식한 거 자랑하느냐'는 종종 오해 섞인 눈총에도 적극적으로 사연을 꺼내 놓는 이유는 오로지 장기이식만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서다.

다음달 11일이면 순선 씨가 장기 이식수술을 한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이들 부부가 새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수영 씨와 순선 씨는 생일케이크 촛불도 이날에 밝힌다.

부디 더 많은 장기이식 환자들이 제2의 생일을 맞이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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