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천막에서 설 맞은 밀양 할매·할배, 지난 연말부터 59일째 농성…새해 인사 나누며 각오 다져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주민 안병수(66) 씨가 마을 어른 김석조(80) 씨에게 세배를 드린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고답마을 뒷산 115번 765㎸ 송전탑 아래. 이곳에 설치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농성장에서 음력 새해 첫 인사를 드린 것이다. 자연스레 김 씨도 맞절을 했고, 주변에 앉았던 여섯 분의 '밀양 할매들'도 엉겁결에 절을 했다. 집단 세배가 된 셈이다.

'밀양 할매들'은 '송전탑 막는 투사'라는 의미로 이미 고유명사 비슷하게 됐다. 창녕군 성산면 방리마을 북경남변전소에서 부산시 기장군 신고리1호 원자력발전소까지 연결되는 765㎸ 송전선로 중 밀양시내 69기의 송전탑이 다 들어선 지금도 "송전탑은 결국 다시 뽑히게 돼 있다"고 자신하는 이분들한테 지금 전 국민은 '전기의 가치'를 새삼 배우고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농성장 안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상동면 고정리 주민들. /이일균 기자

왜 다시 뽑히게 돼 있다는 걸까? 안병수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2005년 8월에 한전(한국전력)이 상동면 주민설명회를 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을 이렇게 하고 있어요. 물론 많은 주민이 돌아섰제. 아들 일자리 준다꼬 돌아서고, 보상비 올려준다꼬 돌아서고. 그런데 결국 반대하는 사람이 끊긴 적은 없어요. 끊길라 하니까 수녀들이 도와주고, 국회의원들이 나서주고, 활동가들이 함께해주고. 지금은 다 꼽힜지마는 송전탑 나쁘다카는 걸 전국에 알린 밀양은 우찌보면 복 받은 거지."

"왜 다시 뽑힐 끼냐꼬예? 이기 필요없는 전기라 카는 걸 다 아니까. 10년 전엔 경기도 안성변전소로 보낸다고 했어. 그런데 지금은 대구까지 간대. 재작년엔 한전 부사장이 이 전기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할 원전 발전 시험가동용이라고 진실을 말했다가 짤렸어요. 임시로 쓸 거니까 필요없는 전기라는 거지. 저거가 인정한 사실이고, 당연히 뽑힐 수밖에 없는 기라."

할매라 하면 조금 억울해할 것 같은 김계옥(56) 씨는 '전기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집에는 전기요금이 한 달에 만 원도 안 나와요. 농촌 사람들 정말 전기 안 써요. 도시에서 다 쓰지. 그런데 송전탑은 여기다 다 꽂아. 이게 말이 돼요?"

옆 할매들이 "참 내, 무슨 만 원밖에 안 나와? 2만~3만 원 나오지"하면서 지청구를 주면서도 거들었다.

"도시에 널려 있는 가로등 불 하나씩만 꺼봐. 집집이 전기제품 하나씩만 아껴봐. 이렇게 무시무시한 철탑 안 세워도 돼."

나중에는 '통행금지'를 부활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밀양 송전탑 합의 거부 225가구 주민들이 참여하는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농성장은 이처럼 전기의 가치를 전 국민에게 환기시키는 상징적 장소다.

지난해 12월 26일 '한전 사장의 사과' '피해 실사기구 구성' '불필요 시 송전선로 철거 약속' 등 3대 요구안을 내세우며 농성을 시작한 지 59일째.

한국전력 측의 농성장 단전 위협만 이들을 압박하는 게 아니다. 농성장 아래 버티고 선 100m 높이의 765㎸ 송전탑은 벌써 이들을 위협한다. 시험송전 전류가 때로 '치직치직' 하는 기분 나쁜 소리로, 때로는 '왱'하는 굉음으로 이들을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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