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누비는 마에스트로…손님 이미지 보고 음악 선곡

지난해 말 밤 늦게 이어진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익숙한 가곡 한 곡조가 귓등에 스친다.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작사·작곡)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혹사당한 귀가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은은한 가곡을 만나니 코가 절로 흥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노래 아시네요. 노래 참 좋죠." 콧노래를 듣던 택시 기사가 슬쩍 말을 걸어온다. 약간 하이톤에 상기된 목소리에는 흥이 담겼다. "이 노래도 한 번 들어보세요. 밤에 듣기에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생소한 클래식이었지만 음주로 쿵쾅질하던 심장을 노곤히 잠재우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택시 안에서 그것도 기사와 클래식 음악으로 환담을 나누는 일은 좀체 없는 법.

참 재미난 경력을 가진 분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원에서 개인 택시를 운전하는 김기철(62) 씨를 만난 건 이렇듯 우연이었다.

김기철 씨는 버들합창단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김 씨는 지난 2003년 사진관을 운영하다 사업 투자에 실패하면서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김 씨 택시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그치지 않는다. 클래식부터 가곡, 팝, 대중가요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손님에 따라 이미지를 보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골라 선곡한다.

"제가 버들합창단 창단 멤버예요. 단원으로 시작해 실무 기획까지 다 봤었죠. 지금 마산 음악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다 저와 합창을 통해 친해진 분들이 많아요. 제 택시가 음악과 함께하는 자양분인 셈이죠." 버들합창단은 지난 1972년 성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민간 합창단으로 '합창이 강한 도시 마산'을 이끈 대표적인 단체다.

음악과 함께 늘 웃음띤 얼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다. "한번은 출근 시간에 여자 손님이 탔어요. 타시더니 음악이 참 좋대요. 아침에 남편과 싸워 심란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면서요. 마음이 차분해진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해보라 했어요. 이내 전화를 하더니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남편이 먼저 사과를 한 거죠. 택시는 이렇게 치유와 감동을 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씨는 손님 앞에 택시를 세우기 전 손님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다. "제가 먼저 손님을 섬기면 손님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배려와 섬김'을 삶의 기본으로 정한 저의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배려와 섬김'의 자세는 택시 운전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자리잡았다. "십수년째 편찮으신 어머니와 매일 세 끼를 같이 먹는데 늘 무릎을 꿇고 정성들여 밥상을 차립니다.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원탁에 앉아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하죠. 상대방을 알아야 섬길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하니 절로 친절이 몸에 뱄죠."

김 씨는 지난해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감성을 채우는 일도 하고 있다. 운전을 하다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짧은 글과 함께 사색을 정리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감성을 다듬고 깊은 사색을 즐기는 김기철 씨. 그의 택시에는 충만한 행복이 빚은 낭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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