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는 세계 유명 여행지들의 엽서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 가죽과 염색공장이 있는 페스이다. 페스의 오래된 골목은 좁기도 좁거니와 워낙 미로 같아 길을 잃기 십상이라 가이드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지는 곳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모험심 강한 우리는 이에 개의치 않고 되레 길 잃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우리는 정처 없이 좁은 골목길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가죽, 염색 공장도 발견하고 아름다운 모로코 사원도 발견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상치 못한 보물을 발견했다.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 한 오래되고 중후한 멋이 깃든 문 앞에 잠시 멈춰섰고 이내 장난기가 발동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그 문 앞에 서서 문을 여는 시늉도 하고 그 집안으로 주인인 것처럼 문을 열고 들어갈 것 같은 설정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들이 무색하게 그 문을 당당히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 남자는 그 문, 아니 그 문이 달린 집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이 집과 문은 자신의 것이라며 들어와서 차 한잔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그가 우리를 따라 나섰다.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가 한국 태권도 유단자임을 알게 됐다. 괜스레 반가운 마음에 그의 집으로 다시 발길을 돌려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의 집 안은 오래되고 멋들어진 문과는 다르게 허름해 보였다. 집에는 나이 많으신 그의 어머니가 계셨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몸짓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잠시 앉아 차도 마셨다. 어머니께선 아들의 험담을 농담식으로 하셨는데 어머니의 몸짓과 표정이 너무나 실감 나서 언어의 장벽이란 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깔깔대다 그의 집구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집은 한번 불에 타서 전면 보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주택개발지원사업을 이용해 집을 개조 및 보완해 게스트하우스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곳엔 또다른 보물이 있었다. 페스의 전역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풍경에 사로잡혀 한참을 그렇게 그곳에서 페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차만 마시다 가려고 했는데 결국 저녁까지 그곳에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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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가 만들어 준 오믈렛도 먹고 차도 한잔 더 마시다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 중 나는 그렇게 또 한명의 이방인을 열린 마음으로 초대하고 받아주는 현지인을 만났고 문화를 공유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마음을 공유했다. 비록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일지라도 내 마음속의 페스는 많은 엽서가 보여주는 가죽, 염색 공장이 아닌 그와, 그의 공간, 그의 어머님,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김신형(김해시 장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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