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아너소사이어티 아름다운 나눔] (1) (주)거산 고대웅 사장

우리나라 시장경제는 분배를 외면한 채 성장만을 강조해왔습니다. 이 탓에 양극화 심화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기부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자본주의 부작용 속에서도 그 사회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기부문화가 싹을 틔워 조금씩 확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너소사이어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기부문화를 성숙하게 이끌어 사회공동체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회지도자 모임입니다. 1억 원 이상 기부하는 개인에게 자격조건을 줍니다. 1월 현재 경남에는 모두 48명 회원이 가입해 있습니다.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도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인터뷰 기획을 연재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난관을 극복하면서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일궈왔습니다. 기부라는 명제를 제쳐두고라도 그들이 살아온 궤적은 또 다른 이에게는 길이 되고, 등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 삶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기부, 잘 살 수 있었던 데 대한 보답" = 고대웅(69) 사장은 2013년 2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도내 26번째 회원이지만 경남 부부 회원 1호로 더 유명하다. 그의 뒤를 이어 부인 박영신(64) 씨도 같은 해 5월 기부를 약정했다. 부부 각각 1억 원씩이다. 고 사장이 아너소사이어티의 문을 두드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지금까지 각 기관에 기부를 해왔을 뿐 아니라 자원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제주도로 가려고 했는데, 회사 창립 20주년 되는 4월이었어요. 직원 40여 명과 함께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여행경비를 지급해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세월이 고마운 거라. 참 20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저 혼자만 잘 살아서 잘 산 게 아니잖아요. 사회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기부를 결심했어요. 행복이라는 큰 선물의 이자 일부를 갚는 거죠."

도내 26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경남 부부 회원 1호로 이름을 올린 ㈜거산 고대웅 사장.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기술자의 길 그것은 운명 = 모두 그랬겠지만 고 사장은 6·25 한국전쟁 시기에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유학 때문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왔고, 고향에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누이는 전쟁이 나면서 함흥에서 <국제시장> 영화 속 그 배를 타고 거제로 피난을 왔다. 연합군이 서울을 수복하면서 고 사장 가족은 고모가 살고 있던 서울 영등포에 정착을 하게 된다. 정치판에 빠져버린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팥죽을 쑤어 함지박에 이고 온종일 이곳저곳 다니면서 팔아서 연명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군복 장사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가정형편이 나아졌고 대학 진학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법이었던 군복 장사가 단속으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가세는 다시 기울었다.

"대학 2학년을 다니다 부모님에게 부담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군대에 갔어요. 제대해서도 복학을 못 했거든요. 그러고도 몇 년 더 방황을 했죠. 그러다 정신을 챙기고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그런데 그게 오히려 득이 됐죠. 참 잘한 선택 같아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죠."

◇한우물 팠기에 성공 = 취직한 회사는 인천에 있는 알루미늄 사형주조업체였다. 이곳에서 5년을 근무하다 다시 회사를 옮겼고, 1993년 지금의 회사 ㈜거산을 설립한다. 3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당시는 말단사원이었고 지금은 업체 대표라는 직위만 달라졌을 뿐.

"아내가 알뜰히 모은 돈하고 친구와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7000만 원으로 창업을 했는데 6개월 만에 뚝 떨어졌어요. 초기부터 일은 좀 했지만 새로 생긴 회사라고 대금 지급을 바로 해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받은 어음을 친구에게 할인해서 돈을 또 만들고…. 그해와 이듬해 정말 힘들게 버텼죠. 그 뒤는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어요."

처음 공장을 차린 곳은 함안군 칠원면이었다. 말이 공장이지 투자금이 적은 탓에 200㎡(60평가량) 빈 양계장을 빌려서 시작해야만 했다. 지금의 칠북면 공장은 2007년에 신축·확장해 들어왔다. 22년 만에 60평의 공장은 수십 배 늘었고, 3명으로 시작한 직원은 50명으로 늘었다.

"줄곧 이 분야에서 제품 개발을 해왔죠. 합금주물기술 및 제품을 개발하면서 한 세월을 보낸 거지요. 그 결과로 이 분야에서는 일가견을 가지게 됐고. 하지만 지금도 많이 모자라요."

◇기술력은 최고의 재산 = ㈜거산은 방위산업용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부품을 제작하는 강소기업이다. K1·K2 전차, K200·K21 전투장갑차, K9 자주포, 함대함·지대공 유도무기(미사일) 등에 들어가는 구조물과 엔진·변속기에 사용되는 프레임을 주조로 만드는 업체다. 사형주조는 모래로 만든 주형에 용융된 금속을 주입해 원하는 형상을 얻는 방식으로 거산은 이 중에서도 이산화탄소성형법의 정밀주조방식에 특화된 기업이다. 이 기술로 제작된 3㎜ 두께의 가볍고 견고한 알루미늄합금 유도무기 관련 부품은 일류 제품으로 인정받는다.

㈜거산은 수입에 의존하던 고가의 방산부품 국산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거산과 고 사장은 그동안 산업자원부 장관상, 지식경제부 장관상, 국무총리상 등을 받았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고 사장은 제품 다변화 및 대형화는 물론 항공 관련 부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남은 재산·인생 사회에 환원할 것" = 고 사장은 특히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자수성가한 것도 이유일 터다. 그는 아너소사이어티 기부에 그치지 않고 남은 재산을 그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제가 죽으면 남은 재산을 기부하려고 생각해요. 제가 먼저 갈 수 있으니 아내 것은 떼놓고…. 딸이 둘 있는데 서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저희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는 힘이 있을 때까지 자원봉사를 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여생 또한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봉사방법을 찾아서 실천할 생각입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받은 것들을 되돌려주고, 또 베풀면서 더욱 의미 있는 인생 후반부를 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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