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이웃마트' 창원 팔룡점장 김동규 씨…유통업 '연봉 5000만 원'일군 노력파…신문으로 공개구혼 나선 '순정남'

맨손이었다. 과장 조금 더해 자신감 하나 믿고 마산에 왔다. 그때가 1998년 말. 그의 나이 스물하고도 여덟을 향하고 있을 때였다. 청년은 다짐했다. 유통업계에 발을 내딛기로 한 이상 꼭 성공하겠노라고.

44살 김동규 씨를 처음 알게 된 건 본보 광고(1월 27일 자 자유로운 광고란)를 통해서였다. <연봉 5000만 원에 34평 고급 아파트 소유 노총각 '성실 남', 마트 지점장을 잡아라!>란 헤드카피가 그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18년 전 몸뚱어리 하나 믿고 마산으로 왔던 청년 김동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제가 전기·기계 쪽으로 전문지식이 있어 처음에는 기계관리 쪽에서 일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24살 때부터 4년 정도 부산에서 생활했는데요. 그러던 중 뜻한 바 있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목표가 있었다. 차후에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를 가지고 싶었다. 그의 눈에 유통업이 들어왔다. 경기가 원활해 판매도 잘 되겠다,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데 매력도 느끼겠다.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생활정보지 구인구직란을 살피던 중 지금 회사와 연이 닿았다.

"당시 방 한 칸 얻어놓고 직장 생활하던 고향 친구에게 얹혀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타지역으로 발령 나 떠나고 혼자 있게 됐는데, 정착도 안 된 상황에서 이래저래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타지에서 노력과 성실 하나로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김동규 좋은이웃마트 창원 팔룡점장. /류민기 기자 fbalsrldi@idomin.com

한겨울이었다. 연탄아궁이에 문제가 생겼는데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터라 수를 쓸 수가 없었다. 찬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 얼음을 깨 씻고 출근하기를 며칠. 동규 씨는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당시 월급이 60만~70만 원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생활비 정도밖에 안 됐죠. 월세 나가고 밥 먹고 교통비 내고 옷 사 입고…. 제가 알뜰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저축이라든지 그런 쪽에 있어서는 생각을 못 해봤습니다."

다행히 일은 재미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를 해 이익을 창출하고 또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게 힘들면서도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동규 씨는 얼마 안 되는 수입에도 맡은바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5년 정도 지나니까 회사가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전까지는 굉장히 어려웠기에 월급을 많이 못 받았는데, 회사가 안정을 찾고 확장도 하며 커지다 보니까 제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돈이 모인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렇게 정착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맨손으로 일궈낸 삶. 지금은 연봉 5000만 원에 34평 아파트를 소유한 마트 지점장이 짝을 찾고자 광고를 냈다. '노총각'이란 딱지를 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곁에서 잠자코 얘기를 듣던 권재도(54·창원시 의창구) 목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권 목사는 자신을 '결혼추진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분이 워낙 성실하다 보니까 짝을 찾을, 데이트할 만한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여성들에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주위에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 같아요. 제가 딱 그걸 알고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거지요."

부부의 날(5월 21일)을 주창, 지난 2007년 국가기념일로 만드는 데 앞장선 바 있는 권 목사가 보기에 동규 씨는 나무랄 곳이 없었다. "이분 회사의 대표이사가 저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18년간 보아온 바로는 이 사람은 진국이다. 내가 신용보증을 해주겠다'고요."

동규 씨도 할 말이 있다. "저도 남자인데 왜 관심이 없었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이 컸죠. 30대 젊음이 한창 넘칠 때 그리움도 많이 탔고요. 그런데 당시 주어진 현실에서 뭔가 어떻게 부족한지 소개팅이라든지 선이라든지 잘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정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성까지 만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수익도 안정적이지 않은 탓에 그나마 들어온 만남의 자리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결혼추진위원장 권 목사의 채근(?)에 못 이겨 올해 한국사이버대학교 물류학과에 입학하는 것도 고려한다는 동규 씨. 업무 관련 전문성을 높이고 이성과의 만남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얘기에 동규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일궈낸 삶. 동규 씨 마음에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고졸이면 어떻습니까? 키도 훤칠하고 연봉도 높은 쪽만 선호하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노력·성실 이것이야말로 제 자신감의 근원이자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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