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의 유랑투쟁기>(박성수 지음)…환경캠페인으로 첫 발, 9년 동안 전국 걸으며 기록

2013년 7월 전남 담양군, 찜통에서 버티기.

'이곳저곳 한참을 기웃거리다 초저녁에 문화회관 뒤편 시멘트 바닥에 텐트를 세운다. (중략) 텐트를 치고 들어가 있으니 몸에서 땀이 분수처럼 뿜어진다. 프라이팬 위에서 삼겹살 기름이 나오는 모습이 흡사 내 꼴일 것이다.'

2009년 5월 강원도 화천 가는 길.

'너무도 배가 고픈 나머지, 군부대에 딸린 절에 찾아 들어가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을지 여쭌다. (중략) 아사 직전의 상태는 여태껏 쌓은 명성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둥글이를 군부대 위병소로 이끌었다. 저기 밥 한 끼 얻어먹어야겠는데 일직사령(그날 당직 서는 장교)님 계신가요?'

스스로 둥글이라고 말하는 저자 박성수 씨의 유랑기는 대략 이렇다.

그는 먹을 것, 잘 것, 캠페인 할 전단, 디카는 물론 유랑의 과정을 기록할 노트북까지 꽉꽉 눌러 담긴 배낭을 짊어지고 땀 뻘뻘 흐르는 한여름에 쉰내를 참아가며 걷고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에도 텐트에 몸을 눕힌다.

저자 박성수 씨. /경남도민일보 DB

2006년 8월부터 전국을 걸으며 초등학생에게 '인간사랑 자연사랑 캠페인'을 벌이는 그는 "그럼에도 이러한 모든 물리적 노고는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혼자라는 현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리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몰고 오는 고독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각종 자원봉사와 질서캠페인, 환경캠페인을 벌여 왔다. 환경단체에 몸을 담아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의 야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지구 기후변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도심 속 유랑을 시작한다. 전국 240여 개 지자체를 돌며 초등학생들에게 기후변화방지 캠페인을 하자고 계획한다.

그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라오면서 선생님과 주변 어른들로부터 '인간과 자연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아이들이 경쟁과 성공, 물질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노력이 '참된 삶'이라고 여기는 함정에 빠져들기 전에 먼저 그들의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 필사적으로 먼저 그들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현대 대중소비사회에 저항하고 있다.

그는 온전한 잘 삶이란 개인의 욕구만이 아닌 모두의 행복까지 고려한 책임을 동반해야 하고, 결국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인류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환경파괴라는 지구적 파국에 대해 지구 파괴를 멈추게 하려면 1인당 한 달 적정 소득이 50만 원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의 유랑기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이들이 성적 올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다며 교문 앞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둥글이를 쫓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들. 나그네를 박대하는 절과 교회, 성당의 모습. 캠페인에 대해 목가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유랑에만 관심을 가진 방송국 PD. 초등생 유괴 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안양 지역민의 경계심. 그리고 유랑 중에 셀 수 없이 마주친 길에 버려진 죽음까지.

그는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고자 나섰던 그 의욕에 찬 마음은 번번이 소통되지 않은 높은 벽 앞에서 오히려 나그네를 절망하게 한 지 오래다. 하지만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끔찍한 범죄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몫을 조금이라고 더 차지하기 위해 소외자, 이탈자, 낙오자들을 더더욱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저자는 유랑은 자본 제일주의가 전체주의와 맞물려 지구를 파국으로 밀어붙이는 획일적 일상에 대한 궁극의 저항이라고 강조했다.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는 그가 발걸음을 처음 뗀 2006년 8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길 위에서 쓴 3000여 페이지의 글과 2만 장이 넘는 사진 중 일부를 추린 것이다.

책은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마냥 웃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없을 만큼 묵직하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열심히 하고 재활용 잘하고 전기 코드 뽑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박 씨.

용산참사를 일으키고 쌍용사태를 만들고 강정마을을 유린하고 밀양을 탄압하고 세월호 사고를 일으키고 핵발전 사업을 강행하고 신자유주의를 전파하는 전도사로 그들을 전락시키지 않도록 아이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는 박 씨.

앞으로 몇 년은 더 길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길 바란다. <둥글이의 유랑기> 인세는 장애를 입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쓰인다.

한편 그는 지난 16일 선거법 위반으로 군산교도소로 들어갔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비리를 저질렀던 시의원 후보를 응징하기 위한 1인 시위를 해서다.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택했단다.

320쪽. 한티재. 1만 5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