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에 연연하면 희망의 세상 못 열어...묵은 마음의 찌꺼기 털고 새 마음 챙기자

새해를 맞은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세월은 참 빠른 물살과도 같다.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니지만 우리는 흐르는 세월에도 매듭을 지어 섣달그믐까지를 지난해라 이르고 정월 초하루부터를 새해라 이름 한다. 그렇게라도 아쉬운 것들은 털어내고 새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서일 것이다.

'헌 밥을 새 밥에 섞지 마라'.

새해를 맞으면서 찾아주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었던 덕담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제 맛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아쉬워도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지난 일을 두고 연연하는 것은 마치 갓 지은 새 밥에 헌 밥을 얹어 먹는 것과 같다. 잘한 일도 들뜬 기분에만 취해 있으면 새로운 실패의 씨앗이 되고 아쉽다고 안타까움에만 젖어있으면 아쉬움의 터널은 계속된다.

지난 일은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그 뜻만 취하고 툴툴 털어버릴 일이다. 마치 장사하는 사람들이 하루 장사를 마치고 결산을 마친 뒤 주판알을 툭 털어 버리고 다음 장사를 준비하듯.

지나간 이해(利害)에 묶여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혼돈에 빠진다. 묵은 잎이 다 지고 나야 새 잎이 나는 것처럼 흘러가버린 감정에 붙잡혀 있으면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희망의 세상이 열릴 수 없다. 장사가 결산을 하는 것은 지나간 손익을 따져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향한 출발의 의미가 더 크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그 어떤 때보다 깊은 상처를 안았었다. 그래서 망각이 죄라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 속 깊이 아팠다. 새해의 시작도 특별히 경쾌하지만은 않았다. 공분을 살 만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졌다. 하지만 상처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뜻은 상처를 극복하고 새날을 열어가자는 데 그 참뜻이 있다. 상처에 머물고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새겨 옹골차게 다시 나가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가 겪어온 많은 상처들은 어쩌면 더 큰 만족, 더 큰 수입, 더 큰 성취만을 좇아온 우리 사회의 병이 묵고 묵어서 터진 일이다. 그걸 깨달았기에 우리들은 더욱 아팠고 깊이 슬펐다. 하지만 그 병을 이기려면 상처를 훌훌 털고 기백있게 일어서야 한다.

작고 하찮은 것에서조차 행복을 느끼는 감수성의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내 집 골목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유심히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돈의 헛것'에 중독되어 작은 행복은 잊고 지냈는지 모른다. 큰돈을 들여 행복을 사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것, 내게 있는 것에서부터, 나 자신부터 돌아보고 아끼며 행복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묵은 마음에서 온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실상과 행복이 문득 대문을 열고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오는 행운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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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설 명절이다. 다시 한 번 새해를 맞는 마음으로 지난해 묵은 마음의 찌꺼기들을 청소해 보자. 새로 갓 지은 밥맛처럼 상큼한 새해를 맞이해 보자. 마음의 묵은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을 챙긴다면 한결 어깨가 가볍고 발걸음이 경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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