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85) 고성 만수팜 강준순 대표

잘 정돈된 농장. 한 시설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학창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하려고 학년별로 줄 맞춰 교장 선생님을 기다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쓰러짐도 방지하고 관리하기 쉽도록 파프리카 가지에 묶은 줄이 천장에 연결돼 하늘로 치솟은 큰 키를 자랑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일렬로 선 파프리카 줄기가 반기듯 맞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긴 유리온실 줄기 사이로 군데군데 채 익지 않은 파프리카가 빨간 고개를 내민다.

◇자동차 세일즈맨, 파프리카 농부 되기까지

고성군 마암면 도전 5길 45(장산리 51-1)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는 만수팜 강준순(53) 대표는 유리온실 1만㎡(약 3000평), 비닐온실 5000㎡(1500평)의 농장에서 근로자 4명과 함께 파프리카를 재배하느라 하루도 쉴 틈이 없다. 강 사장은 4개 동 1만 5000㎡ 농장에서 연간 150t의 파프리카를 생산, 이 중 120t을 일본으로 수출해 6억 원 이상 매출에 2억 원가량의 순익을 올린다.

강 사장이 처음 파프리카 농사를 짓게 된 계기가 참 생뚱맞았다.

"2000년대 초 신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자동차 판매 대리점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한 고객이 뜬금없이 파프리카를 재배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며 전업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데 결국 그 사람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자동차 영업이 잘 안되어서'라는 생각이 들어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동차 판매요? 아주 잘했습니다. 마산에서 1·2등을 다투었습니다.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농장에 주문한 고급 승용차를 몰고 갔다가 전업을 결심했습니다. 고급승용차를 운전하는 농민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고성 만수팜 강준순 대표가 농장에서 파프리카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가족의 반대도 그의 고집 못 꺾어

농장에서 파프리카를 처음 봤다는 강 사장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족은 어땠을까?

"말도 못합니다. 집사람과 한 달 넘도록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아내의 반대는 당연합니다. 가장이란 사람이 그동안 잘 운영하던 자동차 영업점을 접고 연고도 없는 고성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는데 반대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강 사장의 결심은 완고했다. 점점 더 '농업은 말 그대로 옛날처럼 자연에 순응해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닌 산업'이라는 확신을 굳혔고, 가족을 설득해 가면서 1년 넘게 틈만 나면 파프리카 농장에 가 일을 배웠다.

마침내 2007년 경매로 나온 시설하우스를 낙찰받았다. 또 부족한 자금은 그간 모은 돈과 은행 융자 등을 통해 마련했고, 파프리카를 재배할 수 있도록 하우스 내부 철거작업과 시설 개선, 농지 매입 등 15억 원을 투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탄탄대로만 아닌 농사 … 우여곡절도 많아

이후 2년 동안 무난하게 농사를 지었다. 제법 수익도 났다. 이제 강 사장에겐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서 더 많은 수확을 하려면 농작물에도, 사람에게도 좋은 환경 친화적인 시설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고성군에서 불기 시작한 '생명환경농법' 영향도 컸다.

하지만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2009년 9월 유리하우스를 더 높게 지으려다 한 동 전체가 무너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엔 보험에 가입조차 안했던 터라 최대 위기를 맞았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 골조가 그대로 땅에 떨어지면서 공간이 생겨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위에선 모두 내가 야반도주할 것으로 생각했더라고요."

22.jpg
고성 만수팜 강준순 대표. /김구연 기자

또다시 가족의 반대가 시작됐다. 자동차 영업을 다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 사장은 포기할 수 없었다.

"엄청난 고민을 했습니다. 한 달 만에 몸무게가 20㎏ 정도 빠졌습니다. 그런데 역시 고마운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처형이 가진 아파트를 처분해 제게 용기를 주었고, 제가 가진 아파트도 팔아 재기할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고성농업기술센터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고요."

◇일본에 편중된 시장, 내수 확대 위해 '좋아요 농부들' 쇼핑몰 개설

누구나 1년 정도 재배기술을 익히면 파프리카로 부농이 될 수 있을까? 강 사장은 끊임없는 노력과 판로가 없다면 어렵다고 단언한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수출이 잘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규모의 대형화 바람이 불었죠. 더구나 최근엔 주 수출국인 일본의 엔저 현상이 심화하면서 이젠 농산물 제값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강 사장은 내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고민을 타개하고자 지난해 7월 농부들이 직접 운영하는 농축수산물 직거래 쇼핑몰인 '좋아요 농부들( likefarmers.co.kr )'을 만들었다. 이 쇼핑몰에선 곡류뿐만 아니라 채소류, 과일류, 농산가공품 등 농민들이 생산한 모든 것들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다.

특히 '좋아요 농부들' 입점을 희망하는 농민들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뒀다. 중간 유통상인의 입점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자 반드시 생산자와 판매자가 동일인이어야 하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농민과 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지난해 11월 11일 진주에서 개장식을 할 당시 50명이던 입점 농민이 불과 두 달여 만에 전국에서 145명이 신청했으며, 현재 95농가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강 사장은 입점 농민들로부터 10% 수수료를 받아 운영비 등으로 사용하는데 경비를 제외하면 2%에 불과해 사실상 적자다. 하지만 그는 더 큰 꿈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나 혼자 농사 잘 짓는다고 고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파프리카만 하더라도 이미 중국에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로 재배하는 곳이 많습니다. 수출시장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정직한 농민들이 잘사는 방법을 고민하다 '좋아요 농부들'이란 쇼핑몰을 만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판매하는 쇼핑몰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입점 신청 농민에 대한 검증을 까다롭게 합니다."

강 사장의 이런 뚝심은 '좋아요 농부들' 소개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직하지 않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뢰받지 못하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발붙일 수 없습니다. 우리 농산물을 살려야 좋은 먹거리, 안전한 농산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좋아요 농부들'은 자연의 명을 받아 생명을 소중히 하는 아름다운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다소 무모한 것만 같았던 강 사장의 파프리카 도전기. 농장을 나서면서 성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함, 소비자들의 신뢰감이 만든 결정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추천 이유>

◇김홍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고객담당 = 만수팜 강준순 대표는 귀농 8년차로 1만 5000㎡ 규모의 파프리카를 재배하면서 에너지 절감용 지열냉난방시스템을 갖춘 1만㎡의 유리온실과 5000㎡의 비닐온실에서 열심히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는 진정한 강소농입니다. 특히 순수한 농민들로 구성된 '좋아요 농부'라는 단체를 조직, SNS 등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와 농산물 직거래로 농가소득 증대와 동시에 경남정보화농업인으로서 지역농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꾸준한 경영개선을 통해 농업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지역의 핵심농민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