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응대 매뉴얼은 악몽…'매우 만족'외엔 반성문을 썼다

지난 2일 삼성전자서비스 마산센터는 폐업했다. 10년 동안 서비스기사로 일한 황성찬(38)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마산지회 교육선전부장은 먼발치서 마산센터를 바라보며 "집보다 편했던 곳"이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저한테는 전부였습니다. 저기밖에 없었어요."

그럴 만했다. 황 씨는 경남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1월부터 10년 넘게 서비스기사로 일했다. 2014년 3월 마산센터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객들의 '매우 만족'을 받기 위해 뛰었다. 황 씨는 '예스맨(YES man)'이 됐다. 오전 11시 59분께 들어온 콜도 달게 받았다. 점심이야 굶으면 되지만 고객만족도가 떨어지는 날엔 반성문과 같은 대책서를 친필로 쓰고 다음날 부진자교육을 받아야 했다.

"입사 전 약 3개월 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부산직업훈련소에서 휴대전화 수리와 고객 응대에 대해 배웠습니다. 교육받을 때만 해도 수리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만의 고객 응대 매뉴얼, MOT(Moments Of Truth·진실의 순간)가 그것이다. MOT는 스페인의 투우경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투우사가 소를 찌르는 그 순간을 말한다. 기업 이미지는 서비스기사와 고객이 만나는 순간에 만들어지므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 삼성의 생각이다. 그래서 서비스기사는 처음 고객을 만날 때부터 수리를 하고 헤어질 때까지 철저히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다. 이는 곧 실적으로 직결된다. 수리 후 고객에게 "만족도 묻는 전화 오면 '매우 만족'한다고 해주세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 것도 업무의 연장선이다.

황성찬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마산지회 교육선전부장이 지난 2일 폐업한 삼성전자서비스 마산센터를 바라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실적에 대한 압박은 피를 말린다. 사측은 외부 서비스기사에게 수시로, 내부 서비스기사에게는 한 시간마다 압박한다. '고객만족도가 만족밖에 안 됐다. 잘해라', '스피드 지수가 떨어진다. 최초 방문시간을 좁혀라', '못하면 콜을 줄이겠다'.

"오전 8시 출근하면 전국 센터별, 개인별로 비교부터 합니다. 한 서비스기사에 대한 평가 항목은 20개 정도 됩니다. 실적을 올리려고 쉼 없이 일하죠. 여름이 제일 바빠요. 그때는 아침마다 탈진하지 않으려고 굵은 소금을 먹었습니다. 밤 12시까지 일하고 집에 못 들어가는 일도 있어요. 당연히 밥 먹는 시간도 없죠."

사측에서 시키면 말없이 했다. 이게 맞는 줄 알았다. 바보처럼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러다가 2012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동래센터에서 노사협의회로 서비스기사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하고, 2013년 천안센터에서 근무하던 최종범 씨가 부당한 처우를 고발하며 목숨을 끊는 사건을 보면서 '이건 아니구나' 했다. 지난해 3월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마산지회를 만들었다.

"솔직히 잘릴까 봐 겁이 났습니다. 전에 서비스기사가 노동조합 밴드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표적감사를 당했고, 사측에 '어떤 불이익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기도 했죠.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노동조합은 데모만 하고, 일부 조합은 돈도 많이 받으면서 왜 하나 했죠.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가 생겼다. 무늬만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었던 것이 현실이 됐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됐다. 기본급이 없어 들쑥날쑥했던 월급이었는데 고정금액이 생겼다. 자신의 차에 기름을 넣고 다녔는데 이제 회사 리스 차량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인 ㈜마산서비스가 지난 2일 폐업해 서비스기사 68명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측의 일방적인 행동이었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협력업체 사장이 서너 번은 바뀌었는데 고용 승계, 경력 인정이 됐습니다. 이번과 같은 일은 처음입니다. 배신감과 안타까움이 드네요. 최근 창원센터 사장이 마산회원구 내서읍 쪽에 올뉴마산서비스센터를 만들었는데 마산센터에서 일하던 비조합원을 우선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불만을 제기하자 조합원 32명 중 18명을 선별 채용했는데 저희는 '전원 고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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