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디지털경제 주도할 보물 큰 틀의‘수출전략’세워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중문화를 의미했던 문화산업은 상당히 ‘불온’한 것이었다. ‘이윤추구를 위해 대중의 욕구를 조작하는 반계몽적인 것’이라며 문화산업을 비판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반사회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런 판단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문화산업이 대부분 일본의 대중문화를 암시했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반일감정과 뒤섞이면서 문화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지배했지만, 이제는 문화로 지배하려 든다”는 경고는 청소년 시절 학교 교실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문화산업은 더 이상 불온한 그 무엇이 아니라 21세기 디지털경제를 주도해나갈 ‘국가기간산업’으로 대접받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미국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제국주의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 것인가’가 과거의 당면과제였다면, 이제는 ‘한류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문화상품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가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문화정체성 ‘수호 전략’에서 문화정체성 ‘수출 전략’으로 뒤바뀐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일본 대중문화를 경계하면서 기울였던 문화정체성에 대한 관심만큼 우리 자신의 문화산업에 대해서는 기울이지 못하는 것 같다. 초창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직은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와 실적에 더 집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 대중문화와 관련된 문화정체성을 ‘불순한 의도’쯤으로 생각한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경우는 문화정체성 문제를 너무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단적인 예가 한류가 막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 붐을 일으킬 즈음, 대통령이 직접 한류 스타를 청와대로 초청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 스타는 청와대 초청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 문화를 수출하는 데 대해 정부가 취하는 태도를 꼬집고 싶을 뿐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만화인 <드래곤볼>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었다. 꼬마가 한 둘 있는 집이라면 드래곤볼 한 두 권은 거의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었고, 꼬마가 없는 자취방에서도 이 만화를 발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일본수상이 한국에서의 흥행을 격려하기 위해 드래곤볼의 작가인 토리아마 아키라를 수상관저로 초대했다 치자.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 “결국 문화침략의 마각을 드러냈다”며 흥분하지는 않았을까.
사실 디지털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혼란스러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한편으론 외국의 문화상품들이 자유롭게 유통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문화전통과 가치.생활양식 등 문화정체성의 기초가 되는 것들이 위협받고 있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고유의 다양한 전통들을 국내는 물론 해외로 파급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기회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문화산업 부흥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전자의 위기보다는 후자의 기회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수출에 관련된 정책에서는 보다 깊이 있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깊이 뿌리박되 열려 있는(deep roots and openness)’ 문화정책이라고 표현한다. 자국 스타가 다른 나라에서 히트 친다고 정부가 나서서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나라마다 문화적 독특성을 가진 다양한 공동체를 존중하고(multiculturalism), 동시에 이들 공동체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interculturalism), 보다 대승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공연된 <지하철 1호선>의 중국 현지 반응은 우리나라의 문화정체성 관련 정책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당시 <북경청년보> 라는 중국신문은 “우리는 ‘지하철 1호선’을 통해 ‘한류’가 한국문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정체성 관련 정책이 그동안 얼마나 얄팍하게 추진돼 왔는지를 꼬집는 대목이었다.<끝>
http://culture.music.or.kr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