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좀 들어보세요] (4)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김옥희 씨

'밀양' 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이름에서 오는 따뜻함. 산 좋고 물 맑은 동네라 곳곳에 붙은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 미르피아' 문구가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가 송전탑, 할매가 떠오르는 아픔의 현장이 됐습니다. 다행히 이 아픔은 새로운 희망을 싹 틔웠습니다. 우리 사회에 던진 반성과 변화에 대한 요구에 많은 이들이 연대와 실천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밀양 사태는 '진행형'입니다. 이 추운 겨울 한데서 할매·할배들이 농성을 하고 있으니까요.

마을 앞에는 단장천이 흐르고, 뒤에는 학이 날아올랐다는 승학산이 있는 명당. 용이 모였다는 예사롭지 않은 태룡리 '용회마을'. 단장면 대부분 지역은 산이 많아 일조시간이 짧은데 용회마을은 들이 넓고 해가 길어 하우스 농사짓기 좋은 곳이다.

이 마을에 김옥희(여·61) 씨가 산다. 깻잎 하우스, 소 10마리, 염소 13마리, 벼, 대추, 콩…. 종갓집 맏며느리에 농사일은 바쁘다. 모시던 시부모님 연로하셔 저세상 떠나보내고, 하나 있는 아들 키워 장가도 보냈다.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김옥희(61) 씨가 지난 14일 밀양시청 앞에서 홍준표 도지사 방문 시각에 맞춰 송전탑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표세호 기자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 뒷산에 철탑이 솟으면서 주민들은 '765㎸ 송전탑'을 이고 살게 됐다. 3년 전이다. 30여 가구 작은 동네, 용회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전에서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765㎸ 송전선로 건설 노선이 마을 뒤로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다. 밀양주민들이 10년 싸우기 시작했을 때도 이 마을은 조용했다. 옆 동네 산외면 보라마을 이치우(당시 74세) 어르신이 철탑 공사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질러 숨진 사건 시점이다.

옥희 씨 남편 박호야(67) 씨가 마을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때부터 '765㎸ 송전탑 반대'라고 적힌 조끼가 주민들 일상복이 됐다. 한뎃 잠을 자는 일도 예삿일이 됐다. 송전선로가 양산에서 밀양으로 넘어오는 바드리마을, 동화전마을, 평리, 밀양댐 헬기장에서 힘을 보탰다. "줄기차게 했지예. 이치우 어르신 돌아가시고 활동하기 시작한 분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포기한 마을, 사람도 있지만…."

용회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지만 태룡리는 한전과 합의했다. 용회마을을 비롯해 인근 3개 마을을 합해 태룡리라 부른다. 그런데 철탑과 가장 가깝고 반대가 큰 용회마을을 빼고, 떨어진 나머지 2개 마을 주민들 몇몇이 나서 한전과 합의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을이 갈라졌다.

옆 마을 지원이 중심이던 투쟁은 용회마을로 집중된다. 그때가 지난해 설 쇠고부터다. 주민들은 승학산에 들어설 101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짓고 농성을 시작했다. 움막농성은 지난해 6월 11일 밀양시와 한국전력이 경찰을 앞세워 강제철거할 때까지 이어졌다. "비참했습니다. 경찰이 새까맣게 들어오는데. 전쟁, 전쟁이었습니다. 연대자들이 많이 와서 다행이었지예. 경찰에 막혀 산을 타고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너무 고맙고, 그날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려 하네."

지난해 6월 밀양 부북면 장동마을 농성장이 철거되는 과정에서 주민이 강제로 끌려나오고 있다./경남도민일보DB

연대자들에게 그는 '옥희엄마', '옥희언니'로 불린다. 옥희 씨는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대책위에서 일하는 19살 남어진이도 고맙고.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좋을 텐데. 어디 많이 배운 사람들이 밀양 생각하나요?"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한 번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765 만나서 괴롭기도 했지만 진짜 좋은 사람 많이 만나고, 늙어서도 많이 배웠지예. 연대자들이 감동을 줬습니다. 어느 자식들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주민들은 받고만 있지 않았다. 지난 연말에는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전국 곳곳을 찾아가는 '72시간 송년회'를 하기도 했다. 강원도 골프장 반대주민, 세월호 유가족, 직장폐쇄나 정리해고에 맞서 굴뚝·천막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밀양은 밀양이지만. 댕기 보니 너무 고통받는 사람이 많데예. 이러다가 나라가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옥희 씨는 송전탑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정부, 한전, 경찰이 주민들에게 한 짓들에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는 "자다가 강도당한 꼴이지예.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사람으로 안보입니다"고 했다. 밀양 단장·산외·상동·부북면 주민들은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현장에서 지난 연말부터 21일 현재 27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시험송전 중단과 함께 △10년간 폭력에 대한 한전 공식 사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사기구 구성과 실질적 피해 보전 △노후핵발전소 고리1호기 폐쇄와 전력수급계획 변경 등 여건 변화 시 철탑 철거 약속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옥희 씨 친정어머니는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 모친은 송전탑 때문에 산을 오르는 큰딸을 매일 걱정했단다. "전화 드리면 '산이가?'라고 물으셨지예. 농성장에 있다 집에 내려오면 안심시켜드린다고 병원에 들러 얼굴 보여드리고 했는데. 765 좀 조용해지니까 돌아가셨네."

그는 대통령이 꼭 한번 와서 송전탑을 보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 눈물 안 흘리게 한다 했는데 양심이 찔리구로. 엄마 심정을 모르는 것 같네예. 우리는 처음엔 개인 피해나 재산 보고 싸웠는데, 큰일을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잘못된 국가정책에 맞서 싸운 밀양사람들이 역사의 산 증인이 될 겁니다."

지난해 1월 25·26일 열린 765kv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제2차 밀양 희망버스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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