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인어공주의 숙명을 지녔다. 대놓고 말해버리면,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벙어리 냉가슴인 영화를 위무하고 통역해주는 '영화비평'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그 '영화비평'이야말로 '영화' 하나 못 만들고 '시'나 '소설' 한 편 못 쓰는 내가 유일하게 넘볼 수 있는 창작의 장이다.

사실 내가 순수한 창작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 안에서 본격적으로 영화공부를 했던 초창기에 국어선생을 하던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나리오도 쓰면서 함께 단편영화 몇 편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한 해 한 편씩 만든 그 영화들은 매년 학생의 날이 되면, 지역(김해) 전교조 선생님들과 각자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든 영화들과 함께 작은 영화제를 통한 만남을 가져보기도 했다. 사 년 정도 이어진 영화 창작과 영화제 운영은 작게는 국어수업을 바꾸어 놓기도 했고, 크게는 아이들과의 관계까지 변화하게 하는 등 보람도 주었다.

그러나 그 영화 창작이라 하는 것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절기 감기 같은 고통이기도 했다. 아무리 감기를 앓아도 다음 감기를 감당 못하듯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하고 성숙하게 하지는 못하게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영화창작을 국어교육과 접목해 보려는 일단의 그 시도는 시쳇말처럼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남겼을 뿐이다. 그러던 와중에 영화창작과 병행해왔던 영화이론 공부를 바탕으로 쓴 평론 한 편이 어느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대학시절, 소설가였던 한 선생님의 조언이 생각난다. '밥을 잘 지을지 몰라도 밥맛은 잘 볼 수 있다. 밥을 잘하는 것과 밥맛을 잘 보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다'라는 말씀. 롤랑 바르트라는 인문학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저자와 비평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작가만이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궁금하다. 내가 '밥을 짓는' 영역이 아닌 '밥맛을 보는' 영역, 즉 영화비평만으로도 창작의 희열과 맞먹는 그 절대적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게다가 그 경지를 넘어야만 내가 전폭적으로 변화하고 성숙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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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영화공부를 한 지 십 년째가 된다. 직장생활을 핑계 삼는다 해도 결코 적지 않게 보낸 세월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다는 부끄러움이 인다. 한편으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와 글쓰기 단련을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것도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해부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영화공부에 전력하며 그것과 글쓰기, 그리고 국어교육과도 접목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공부라는 게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올해는 유난스레 정초부터 학구열이 솟는다.

/서은주(양산 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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