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무시·막말 서러워 남 배려하는 사회 됐으면…여 종업원 성추행 '진상 손님'목격도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한 백화점에서 모녀가 주차요원들의 무릎을 꿇게 만든 사건 등 이른바 '갑질논란'이 뜨겁다.

창원대학교 기계공학부에 재학 중인 김태영(26) 씨는 이런 일이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말투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갑'의 횡포만도 수차례. 여자 알바생이 손님에게 성추행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2009년에 창원대 앞 고깃집에서 알바를 했었어요. 자신을 도청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손님이 술을 시키더라고요. 같이 일하던 여자 알바생이 술을 가져다 줬는데 '술 한번 따라보라'면서 희롱을 하더라고요. 간접적이지만 그때 경험이 얼마나 불쾌했으면 아직도 그 사람 인상착의가 생생해요."

다양한 업종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한 곳에서 꽤 오래 일했다. 그래서 을의 입장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04.jpg

그는 2011년 8월부터 지금까지 창원에 있는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주방에서 음식을 다루고 있지만 이전엔 홀에서 서빙을 담당했다. 직접적으로 손님과 마주하는 일이 잦다보니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

"본인이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모르는 손님이 더러 있어요. 레스토랑에 와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을 먹고 탈이 나자 책임지라고 막 따지는 분들을 보면 답답해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면서 비아냥 대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한 부녀는 테이블 옆에 저를 세워두고 다 들으라는 식으로 음식 맛이 나쁘다면서 품평을 하더라고요. 자신이 값을 지불한 음식 맛을 따지는 건 당연하지만, 꼭 저를 옆에 세워두고 그랬어야 하는지…."

태영 씨는 2013년 4월 한국을 떠나 1년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했다.

워킹홀리데이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 중인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당사자 입장에선 돈도 벌고 여행도 하며 현지문화를 체험하고 외국어 공부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경험이다.

낯선 땅 호주에서 태영 씨는 '관용'과 '배려'를 배웠다. "호텔 방을 청소하는 '룸 어텐던트' 일을 주로 했어요. 손님이 묵고 있는 방을 찾아가 청소를 해야하니까 손님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일이 많았어요. 다들 친절하더라고요. 상냥한 인사는 기본이고, 고향을 떠나 먼곳에서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챙겨주는 분들도 더러 있었어요. 주인의식이 없는 거죠. 기억에 남는 분은 인도에서 온 선생님인데요. 한국에서 공부를 더 하지 않고 왜 워킹을 왔냐고 묻더라고요. 소중한 인생 경험을 쌓으러 왔다고 대답하니까 웃으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더군요.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렇게까지 내 얘길 들어주는 분은 만난 적이 없었어요. 날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제가 만난 분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1년 동안 호주에 있으면서 '갑질'하는 사람은 본 적 없습니다."

최근 대학교 4년 2학기를 마친 태영 씨는 숨돌릴 틈도 없이 취업 준비에 한창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스펙은 보지 않겠다고 강조하지만, 체감상 그렇지 않다.

"저를 포함해 주변 친구들 모두 토익에 토스(토익스피킹), 학점 관리까지 스펙 챙기느라 바빠요. 공기업에선 한국사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을 준다고 하니까 그것도 준비해야 하죠. 이력서에 학점 칸을 없앴다고 하지만, 면접에서 학점이 얼마냐고 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죠."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태영 씨에게,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음…눈에 보이는 성적이나 점수 등 숫자에서 벗어나 구직자의 인격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봐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얘기 들어보고, 논란이 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따져보고요. 적어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봐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