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발이 끝나길 기다리며 간이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손님이 계속 들어온다. 마침 아이 머리 손질도 끝나가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느닷없이 명령조 반말이 들려온다.

"왼쪽은 너무 밀지 말라고, 알겠지? 참 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일단 깎아봐!"

얼핏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미용사에게 요구 사항을 말하고 있었다.

"아줌마, 내 머리가 왼쪽 오른쪽이 생긴 게 다르잖아, 그게 안 보이나? 그걸 맞추라고." "아, 씨~ 아프잖아, 아줌마 왜 그래? 자기 머리 아니라고 막 하는 거야?"

이쯤 되니 미용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두 사람에게 고정이 된다. 미용사 나이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 그 재수 없는 고객은 시종일관 반말에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다. 미용사가 고객의 요구대로 손질을 하면서도 균형이 안 맞아 어색할 거라고 조언을 했지만 들은 체도 않고 자기 얘기만 읊어댄다. 미용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최근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땅콩 리턴'사건이 떠오른다. 물론 이 사건 전에도 대한민국 대기업의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비뚤어진 자본의 논리가 빚어낸 재벌의 횡포에 대다수 피고용인이 어느 정도까지는 관례로 받아들이며 꾸역꾸역 견뎌내는 분위기였다.

'땅콩 리턴'에 대한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는 남다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갑질이기도 하지만 매우 감정적이고 사적인 형태의 횡포였기 때문이다. 강남 유명 아파트의 '경비원 자살 사건'이나 '백화점 모녀 사건' 등 돈만 있으면 너도 나도 갑질을 해대는 졸부들과 함께 국민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어 놓았다.

국민 모두가 갑의 폭력에 분노하고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사회라 하더라도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며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자신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미용실에서 만난 옆통수가 다르게 생긴 재수 없는 진상 고객처럼은 아니어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많은 감정 노동자들에게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갑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정주.jpg
마트에서, 미용실에서, 식당에서, 마치 권리인양 갑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갑이 내일의 을이 되고, 여기의 갑이 저기의 을이 되는 복잡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진짜 갑이 어디 있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갑이 되고 싶다면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접해야 할 것이다.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모르는 자는 결코 진정한 갑이 될 수 없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