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황혜영 성지여고 배드민턴 코치

황혜영(50) 코치가 이끄는 성지여고(창원시 마산합포구) 배드민턴팀은 지난해 전국 무대를 호령했다. 시즌 개막을 알리는 춘계대회부터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국체전까지 메이저대회 4관왕에 올랐다.

황 코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3년이 흘렀으나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국내 선수는 아직 없다.

이제는 후배이자 제자를 가르치는 지도자로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즐거움'이다.

"제가 운동할 때는 운동이 즐겁다기보다 강압적인 분위기가 많았어요.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고 강요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운동을 시켜봐야 선수들이 따라오기 어렵고, 저도 강압적으로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아요. '뛰어나면 즐거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그 덕분일까. 선수들은 오전부터 하는 훈련에도 밝았다. 배드민턴 자체에 대한 즐거움으로, 선수들 스스로 운동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다.

황혜영 성지여고 배드민턴 코치.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성지여고 배드민턴팀 훈련에서 특별함은 없다. 스스로 찾아서 운동하고, 그 모습을 지도자가 지켜보다 다듬어주는 게 대부분이다.

지금 같은 겨울철에는 동계훈련을 진행한다. 동계훈련은 어느 종목이나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1년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황 코치는 이때 체력훈련과 자세 교정에 몰두한다.

황 코치는 "아직 예산이 잡히지 않았지만 동계 전지훈련을 2월 중 한 번 갈 것 같다"면서 "3월에 시즌이 시작되는 만큼 특별훈련 없이 교류전 등 경기력 향상을 위한 실전을 많이 치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마산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 = 성지여고 배드민턴팀은 전통의 강호다. 그간 숱한 우승을 차지했고 국가대표도 여럿 배출했다.

현재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배연주, 정경은(이상 인삼공사)이 황 코치의 제자다. 세계랭킹 8위인 배연주는 지난해 세계배드민턴연맹 슈퍼시리즈 파이널 대회에서 세계랭킹 2위를 제압하는 등 단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경은은 복식에서 강점을 보인다. 역시 황 코치로부터 배운 김혜린(포스코)도 최근 국가대표(복식)로 발탁됐다.

황 코치는 세 선수 모두 뚝심도 있고 배드민턴을 즐기면서 하다 보니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코치는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곧장 은퇴했다. 선수 생명에 한계가 왔다는 안팎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27살 때였다.

하지만 최근 선수들은 30대 중반까지도 선수 생명을 이어간다. 황 코치는 발전된 훈련 환경과 개인 관리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성지여고 체육관에서 제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황혜영(왼쪽에서 넷째) 코치. 황 코치는 1988년·1992년 올림픽을 석권한 금메달리스트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는 충북 진평여고 출신이다. 왜 연고도 없는 성지여고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결혼을 하면서 신랑을 따라 이곳으로 왔어요. 신랑이 지금 성지여고 교사예요. 20년 넘게 마산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여기가 제 고향이죠."

은퇴, 결혼과 함께 마산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황 코치다. 한동안은 배드민턴 라켓도 잡지 않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유소년 국가대표 코치로 일했을 뿐이다.

그러다 지난 1999년 성지여중 배드민턴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성지여고는 2008년부터 맡아 지금에 이르는 중이다.

2007년 전국가을철 종별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고부 단체전에서 7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성지여고는 2008년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르면서 확실한 부활을 알렸다.

황 코치는 자기 자녀들에게 배드민턴 등 운동을 시키지 않은 걸 후회한다. 많은 배드민턴 선·후배 자녀들이 라켓을 들고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후배 자녀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잘해요. 대부분 우수한 선수로 성장하는데 '아, 피는 못 속이는구나' 이따금 생각하죠. 제 아들도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데 배드민턴을 시켰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기도 해요."

◇지도자로서 가장 특별했던 2014년 = 성지여고 7년 지도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뭉클한 한 해는 바로 지난해였다.

"지난해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했어요. 가장 힘든 대회는 전국체전이었어요. 앞선 3개 대회에서 우승해 모두 우승이 당연하다고 여겼거든요. 근데 대진이 우리가 속한 조에 4강권 팀이 다 모였어요. 1회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울산 범서여고를 만났죠."

1회전부터 격전을 치른 성지여고는 힘겹게 다음 라운드에 올랐다. 8강에서 광주체고, 준결승에서 대전 대성여고를 만나면서 체력 부담은 더욱 커졌다.

파죽지세로 올라온 부산 성일여고와 결승에서 성지여고는 초반 고전했다. 세트 스코어 0-2. 한 번만 지면 끝이었다. 하지만 3-2 극적으로 경기를 뒤집으면서 성지여고는 7년 만에 전국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실력은 우리가 나은데 선수 배치를 좀 불리하게 했고, 체력적으로도 지친 상황이었어요.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조언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줘서 정말 기뻤죠."

황 코치는 오는 3월 시작될 춘계대회를 정조준하고 있다. 황 코치는 "좋은 실력을 갖췄음은 물론 인성까지 착한 제자들과 올해도 성지여고가 최고의 팀이라는 것을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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