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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호에 잠긴…까꼬실에 남긴…추억들

[남강 오백리] (16) 진주시 대평면 대평교~당촌리

권영란 기자 kyr65@idomin.com 2015년 01월 09일 금요일

"1969년 남강을 막아 남강댐을 만들었는데 그때 생긴 인공호수지요. 동북쪽으로는 경호강이 흘러와 닿고 서북쪽에서 덕천강이 흘러들어옵니다. 진주시 판문동·귀곡동·대평면·내동면과 사천시 곤명면에 걸쳐 있는데 면적 29.4㎢, 유역면적 2285㎢, 저수량 3억 1000만t입니다. 홍수 조절과 생활용수·관개용수·공업용수 등으로 이용됩니다. 거기에다 다 아시다시피 물이 깨끗하고 경치가 아주 좋아 사계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진주 관광명소라 할 수 있지요."

뭘 소개하는 말일까? 진주 사람이라면 퍼뜩 안다. 진양호(晉陽湖). 산청군 생초면에서부터 경호강이란 이름으로 흘러온 남강 물길은 진주시 대평면 진양호 북쪽에 닿았다.

전범구(53·K-water 남강댐관리단) 부장은 대전에서 진주에 온 지 5년째로 남강댐 인근에 살고 있다. 전 부장은 "대평면 호반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남강과 진양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며 "진양호는 남강, 진주성과 함께 진주의 보물이라 할 만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양호가 생기면서 이곳 지형은 바뀌었다. 옛 지명을 들고 어디가 어디였는지 가늠해서 찾기가 힘들다. 대대로 이어 살던 마을과 사람들은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나야 했다. 이번 구간 취재는 이곳 대평면 당촌리가 고향인 김연옥(49·진주시 평거동) 씨와 김미경(43·진주시 초전동)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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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은 섬이 되고 물을 건너 밭에 가다

대평면 한들 대평교(大坪橋) 앞이다. 다리를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이 호수변에 자리잡고 동쪽 호수변에는 나룻배 형상의 호수 전망대가 놓여 있다. 서쪽으로는 산청군 단성면 소남리와 대평면 경계를 흘러온 물길이 이제 막 진양호에 닿고 동북쪽으로는 진주시 명석면 외율천, 팔미·오미천 등 샛강들이 모두 합수해 이미 진양호로 들어와 있다. 호수인지 습지인지 경계도 없고 사방으로 가득 찬 물길들이 자유롭다.

대평교는 대평면 대평리와 상촌리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1999년 남강댐 보강공사 이후 대평면 지역에 남강댐 수몰지역 주민들의 이주단지가 생겼는데, 이곳과 진주 시내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길이 376m, 폭 12m, 높이 12m로 2001년 완공했다.

귀곡동 까꼬실 가는 길에서 바라본 진양호 풍경. 건너편은 내촌리이다. /권영란 기자

"지금 대평교 있는 데가 나루터 자리쯤 됩니더. 대평리와 건너 상촌리를 왔다갔다하는 줄배가 있었지예. 지금은 물에 잠겨 흔적도 없지만 상촌 나루터 옆에 점포가 있었는데, 그 집 아재가 배를 봐주었어예. 그 아재가 사공은 아니었고 여럿이 돌아가면서 사공 일을 했던 것 같네예…. 또 여기 상촌에는 백사장이 아주 넓었어예. 모래가 진짜 곱고 좋았고 그 옆에 제일골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더. 지금은 잠겨버렸지만…."

미경 씨는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고 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신이 나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평리와 상촌리 하촌리를 잇는 너른 들은 벗들이라고 했다. 4만 평이나 되었다. 상촌리는 양조장이 있고 하촌리는 유흥가가 있었다니 제법 번화했고 그만큼 동네 경기가 좋았다는 뜻일 게다. 대평 쪽으로는 강을 사이에 두고 상촌 쪽으로는 길게 백사장이 이어졌는데 물이 불어나면 들은 완전히 섬이 되었다.

"강 가운데가 밭이었는데 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했어예. 갱조개가 진짜 많았어요. 원래 강줄기였는데 밭에 가려면 배를 타고 다녔지예. 여기에 홍수가 나면 남강 하류에 있는 도동 쪽은 완전 물에 잠긴다고 했어예."

연옥 씨의 기억대로 이곳 주민들은 고구마, 무, 참외, 수박 등을 심어 그 작물을 수확, 운반하는 데 수십 년 동안 어려운 점이 많았다. 거기에다 벗들은 행정적으로 대평리 관할인데 땅주인들은 대부분 상촌리 사람이었다니 이리저리 걸리는 게 많았을 법하다.

주요 교통편이 뱃길이다 보니 배에 얽힌 일이 많다. 연옥 씨는 옛 기억을 떠올리면 배 때문에 즐거웠던 일도 있었지만 차마 생각하기 싫은 일도 있다고 말했다.

"물에 잠기고 70년대 중반이었나. 우리 마을에서 퇴비 증산하러 배 타고 들에 갔다가 돌아올 때 통통배가 뒤집혔어예. 동네 사람들 몇이 죽었는데…. 퇴비를 너무 많이 싣고 오는 바람에 그리 된 거라예. 그 당시는 퇴비 많이 하는 마을에는 상금을 줬던가 그래서 서로 많이 할라고 그랬거든예."

귀곡동은 섬이다, 섬이 아니다?

"까꼬막을 하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해서 들어간다고 까꼬실이라한 것 같네예."

연옥 씨의 말처럼 주민들이 까꼬실이라 부르는 곳은 귀곡동이다. 진양호가 생기고 마을은 물에 잠기고 주민들은 떠난 지 수십 년이다.

대평면 당촌리 사평마을 앞에 있는 귀곡동 표지판.

귀곡동은 섬이 아니다. 그런데도 진주 시내 사람들 중 대부분은 수몰되면서 진양호 안에 생긴 섬이라고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귀곡동에 가기 위해 배를 탔던 옛 기억들이 두어 번은 있기 때문이다.

귀곡동은 또 섬이 맞다. 대평면 당촌리에서 비포장도로 6~7km 들어가면 귀곡동이다. 하지만 중간에 찻길은 끊어지고 걸어서 고개를 두어 개 넘어야 한다. 진주 시내까지 한 번 나가려면 온종일이다. 아니 솔직히 걷고 타고를 반복하며 드나들기란 좀체 쉽지가 않다. 한 번 들어가면 그야말로 고립이다.

귀곡동은 진양호공원 선착장에서 바라보면 바로 눈앞에 있다. 그래서 뱃길을 이용하는 게 더 활발했고 많은 이들에게 섬으로 기억된 것이다.

옛 나루터 자리에는 호수 전망대가 놓여있다.

섬처럼 남아있는 귀곡동에 마지막까지 농사를 짓기 위해 오가던 이는 통통배 '귀곡호' 진문현 선장이다.

"선장님이 시내에 집이 있었는데 아지매와 함께 귀곡동으로 농사를 지으러 다녔지예. 집은 잠겼지만 다행히 논과 밭이 남아있었나 보데예. 배 선장이니까 아무래도 드나들기가 쉽다아입니꺼.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를 사용한다 쿠데예. 그곳에서 때로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기도 하고요."

다행히 어렸을 때 살던 집이 물에 잠기지는 않아 가끔 찾아가보는데 허물어져가는 것을 보는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고 했다.

'귀곡호'는 더러 고향을 찾는 사람이나 성묘객을 태우기 위해 운항하고 있었지만 진 선장이 논밭 일을 하러가는 수단이기도 했다. 수십 년 그렇게 오가며 농사를 짓던 진 선장은 2013년 작고했다고 한다.

"지금은 진 선장님 아들 진영훈(46) 씨가 선장이라예. 진양호 조정 선수들 배 대는 데에서 하루에 3~4번은 왔다갔다할 기라예. 지금도 고향땅 보러가는 사람, 성묘하러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쿠데예."

연옥 씨는 1970년대 중반 통통배를 타고 진양호 주변에 있는 이웃 마을과 판문동 진양호공원 선착장을 오가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양호, 신풍호, 귀곡호가 있고 내촌 진수대교쪽 사람들이 오가는 삼원호가 있었지예. 기억하기로는 4척이 매일 댕겼어예."

하촌리 선착장이 있었고 당촌리 사평마을 앞에도 선착장이 있었다. 남강댐 수문을 닫으면 물이 꽉 차 벙벙해지니까 마을 앞길까지 배가 닿고 수문을 열면 물이 빠져 배가 동네까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사평마을 주민들은 땅꼬(땅골)나루까지 한참 걸어가서 배를 타야 했다.

"겨울에는 진양호 물이 얼어 배가 들어오지 못했어예. 그라모 또 땅꼬까지 걸어가서 배를 타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으니까 진양호가 완전히 꽝꽝 얼면 어떤 때는 판문동 진양호선착장까지 얼음 위를 걸어댕기기도 했어예. 아주 가끔 얼음구디에 빠지기도 했지만…."

엄마 우리 엄마, 얼마나 배고팠으면…

"바늘, 바느실, 바나고개로 불리었는데 혼자 다니기는 좀 무서웠던 곳이지예. 애기장터가 있기도 하고 여시전설도 있고…."

바늘고개는 하촌리에서 당촌리로 넘어오는 고개이다. 지금은 도로가 확장되면서 높고 뾰족했다는 말이 무색하다.

"그래도 그 고개가 온갖 재작지는 데였지요. 등하교 때는 열 명씩 떼로 다니는데 한 두어 명은 따돌려 울리기도 하고 아침에 학교 가다가 밭에 심어져있는 무시를 발로 차놓으면 오후에 집에 갈 때는 새들새들해져 먹기가 좋았지예. 고구마도 그렇고…. 다들 그리 마이 했는데 우짜다 주인이 지키고 있다 잡으러 오면 도망 댕기고…."

연옥 씨는 이제는 돌아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물에 잠겨버린 고향과 어린 시절은 늘 애틋하고 그리운 추억이라고 말한다.

물속에 잠긴 당촌리 옛길. /권영란 기자

"당촌리 황새골 도꼬모티 길 밑에 새미가 있었는데 물 먹으러 내려갔다가 놀라 자빠지기도 했지예. 봄에 버들강새이가 마구 올라오는데 그 사이에 배미가 버글버글해서 어찌나 놀랐던지 엉엉 울면서…하하하."

당촌 삼거리에 이르면 호수 안 습지 사이로 물에 잠긴 다리와 옛길들이 간간이 보였다가 잠겼다가 이어지고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마치 물속 옛 마을로 들어설 것 같다.

미경 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억한다. 이곳 사평에서 전해지는 동냥아치 어미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평 아지매들은 이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치맛자락으로 눈물부터 찍어낸다고 한다.

"동냥아치 어미가 애를 업고 사평에 밥 얻어먹으러 왔는데 다들 딱하게 여겨 먹을 걸 챙겨 줬다데예. 애 먹이라고…. 근데 그걸 들고 가던 어미가 땅골 쯤에서 자기가 먹었다데예. '내가 먹고나서 니는 젖을 줄게' 하고는 허겁지겁 먹다가 고마 그 자리에서 죽었다데예. 굶어서 쪼그라든 속에 음식이 급히 들어가 체한 거지예."

사평 아지매들은 얼마나 배고프면 자식을 두고 어미가 먼저 먹었것노라고 탄식을 했단다. 다 자식이 얼마나 귀하고, 또 배고픔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니 더욱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당촌리 앞 습지. 마구 풀어헤쳐놓은 수풀더미 사이로 어미 잃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금세 놀란 흰 두루미가 서둘러 날개를 펼친다. 1049 호반로가 살짝 굽어지며 내촌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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