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허울뿐인 주민투표제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주민의 자치권이 크게 강화됐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자인 자치단체장과 그것을 감시하는 의회 의원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치단체장과 의회가 한통속이 되어서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 가면 어떻게 될까? 이럴 때 주민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자 도입된 제도가 주민투표제도다. 그러나 이런 주민투표제도가 현실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남 도내·외 사례에서 현행 주민투표법이 안은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점의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자치단체가 법을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집행하려 한다는 것과 법 자체가 안은 문제점이다.

경남도는 지난해 많은 논란 속에 진주의료원을 폐업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시민사회 세력이 나서 경남도에 주민투표를 청구하고자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신청했지만, 경남도는 이를 거부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재개원이 주민투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고, 창원지법과 부산고법, 대법원 모두 진주의료원 폐업과 재개원은 주민투표 대상에 해당하며, 경남도가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경남도는 판결이 나온 지난달 24일 주민투표법 요건에 맞춰 서명을 받아오더라도 주민투표는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2년 4월 26일 대법원 판례 중에 언급된 지방자치법 제13조 2의 제1항(현재 법 제14조 1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 등에 대해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이 규정은 지방자치단체(주민)에 주민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지, 자치단체장 마음대로 주민투표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한 규정은 아니다.

만약 경남도 주장대로라면 따로 주민투표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주민투표 대상이 주로 자치단체장이 시행하려는 정책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이러면 자치단체장이 거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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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8일 강원 삼척지역 읍·면·동 주민자치센터 등 14개 투표소에서 삼척 원자력 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연합뉴스

김상군 변호사는 "주민투표법을 살펴보면, 주민들의 주민투표 청구가 있으면 자치단체장은 투표 요건, 서명인 숫자, 절차 등을 확인하고, 여기서 문제가 없으면 주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며 "이는 자치단체장의 재량행위가 아니라 의무적인 귀속행위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정부가 삼척에 원전을 건설하기로 하자 삼척시장과 시의회, 시민들이 모두 나서 이를 주민투표로 판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 건설이 국가 사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민투표법상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투표관리 수탁을 거부했고, 시와 시의회, 주민들은 자율적으로 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주민투표를 했다. 주민 67%가 투표에 참여했고, 투표자의 85%가 원전 건설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원전 건설을 강행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주민들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주민들의 결정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현행 주민투표법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외에도 주민투표 청구 요건 완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주민투표를 청구하려면 일정 기간 내에 투표권이 있는 주민 5~10%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광역자치단체는 3%, 기초자치단체는 5%로 완화하고 광역자치단체의 서명 상한을 10만 명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주민투표 때 공무원이나 이·통장을 동원하는 관권·금권 개입을 차단하는 방안도 필요하고,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처럼 인접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은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주민투표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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