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리 해안선 따라 들려오는 차르르…바닷물 구르는 소리



차르르 차르르, 바닷물이 구르고 있었다.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 쏴아쏴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드넓게 올망졸망한 몽돌들 사이로 거품을 일으키며 물결이 드나든다. 사실은 몽돌들이 바닷물에 떼밀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내는 소리이건만, 마치 물결이 굴러다니며 내는 소리로 들린다.
학동몽돌해수욕장은 움푹 파인 만 깊숙한 데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바다가 잔잔한 편이다. 따라서 바닥에 몽돌이 아니라 모래가 곱게 깔려 있다면 이처럼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표지판에 적힌 대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가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만큼 사람을 끄는 맛이 있다.
말하자면 지난 여름 들렀을 때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그 때도 몽돌과 물결이 한데 어우러져 내는 소리는 똑같았겠지만,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걸친 사람들로 넘쳐 났었다. 바다 위에는 나름대로 멋지게 치장한 모터보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물 속에 있는 사람들도 저마다 즐거움에 겨워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게다가 길가에는 디스코 클럽을 홍보하는 자동차가 버티고 서서 앰프 소리 드높여 손님들을 불러모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몽돌을 핥아내리는 물결 소리만이 조용한 가운데 멀리까지 들린다.
바다 위로 섬이 두둥실 떠 있는 풍경은 예나 이제나 아늑하고 고즈넉하기가 견줄 데 없겠다. 여름엔 넘치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들로 바닷물에 몸을 통째로 담글 만큼 가까이 하면서도 이처럼 독특한 몽돌 구르는 소리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적한 지금은 어떤가. 바닷가에는 한꺼번에 몰려나온 집안 식구들이 바다와 뭍이 만났다 헤어지는 경계를 따라 발길을 놀리며 걷는 즐거움을 한껏 더하고 있다. 일부는 막대기를 가지고 가까이까지 밀려온 바다풀을 건져 보느라 애쓰고 있다. 부부로 보이는 40대 남녀 한 쌍은 몽돌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면서도 멀리 방파제 너머까지 나란히 걷는다.
길 위에 딱 하나뿐인 어묵과 삶은 달걀을 파는 손수레도 한 쪽 구석에 그림처럼 서 있을 뿐, 오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그래도 관리원조차 없는 주차장이 사람들이 싣고 온 차들로 반 넘어 차 있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다.
학동몽돌해수욕장은 너비가 적어도 십리는 되어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 끝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는 데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제에는 학동몽돌 말고도 보기 좋은 바다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거제섬이 한자로 열 십자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해안선도 아름답다.
이름난 해수욕장들을 여름 아니라 철 지난 겨울에 찾는 데 덧붙여, 해안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둘러보다가 풍경이 좋은 데 차를 세우고 때로는 운무에 잠겨드는 바다를 감상해도 좋겠다.
길 따라 심어진 동백이 짙푸른 잎새 사이로 노란 꽃술과 빠알간 꽃잎을 내보이는 것도 청신한 맛을 준다.
물론 해수욕장만 몇 군데 감상해도 좋다. 14번 국도를 따라 장승포와 지세포를 지나 와현.구조라를 들러보고 학동에서 멈춰도 괜찮다. 내친 김에 14번 국도의 끝에 매달린 명사와 여차를 들러 고운 높게 솟은 솔숲 아래에서 모래밭을 밟아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거제의 서쪽과 동쪽에 있는 죽림해수욕장이나 농소몽돌.흥남.덕포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1018번 지방도에 몸을 실어도 된다.



△가볼만한 곳-학동 자생 동백나무숲

겨울에 꽃을 피워 봄에 떨구는 아주 별난 나무가 동백이다. 부산 해운대 동백섬이나 전남 여수 오동도.전북 고창 선운사가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거제 학동의 자생 동백숲이 더욱 넓고 클 것이다.
동백꽃에 전설이 없을 리 없다. 옛날 남쪽 섬에서 부부가 땅을 갈고 고기를 잡으며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남편이 배타고 나가 없는 사이에 도둑이 들어와 아내를 욕보이려고 했다. 아내는 남편이 떠난 바닷가로 달아나다가 도둑의 빠른 발걸음에 잡히게 되자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아내가 숨진 그 자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가 자라났다. 하얗게 내리는 눈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꽃을 피웠는데 흰 눈과 노란 꽃술 때문에 더욱 핏빛으로 보이는 빨간색이었다. 이것이 바로 동백이다.
동백꽃의 특징은 두 가지. 첫째는 꽃잎이 하나씩 지는 게 아니라 송이째 뚝뚝 끊어지듯 떨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옛날 그 아내가 낭떠러지에서 몸을 날릴 때처럼 말이다.
다른 한 가지는 벌과 나비가 없는 철이라 새의 힘을 빌려 열매를 맺는 조매화(鳥媒花)라는 점이다. 동백숲에는 새들이 깃들이고 산다. 기록에는 동박새라고 나오는데 문외한으로서는 어떤 새인지 잘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여러 새가 어울려 있는 것만은 뚜렷하다. 요즘은 벌통을 짐차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꿀을 모으는 꿀벌치기들이 많아져 사정이 달라졌다.
천연기념물인 팔색조가 깃들인다는 거제 학동 동백나무숲은 학동몽돌해수욕장에서 명사해수욕장쪽으로 2km 남짓 가다보면 나온다. 하지만 가기에 앞서 기대 수준을 맞춰야 한다.
잎이 피기 전에 화사한 꽃이 피는 벚꽃이나 목련.개나리 따위와 견주면 안된다. 울긋불긋 눈에 확 띌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접는 게 좋다. 붉은 꽃잎과 몸을 던지는 듯한 낙화에서 어떤 굉장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마주하면 100% 실망하고 만다.
오히려 늘푸른 나무라는 데서 싱싱함을 찾아내려고 해야 한다. 반들반들 윤기를 내면서 햇살을 퉁겨내는 짙푸른 이파리에서 건강함을 찾아 읽고 그 사이사이 숨어 있는 꽃들의 하품이랄까 깜빡거림을 놓치지 말고 엿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동백숲에 들어가면 뜻밖에 매화나무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내리는 눈처럼 어질어질 널려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짙게 배어나는 꽃향기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바로 앞에 두세 그루 매화가 꽃을 매달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동백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지했으나 올해 초부터 풀렸다. 거리에 심어놓은 동백들은 마치 작은키나무처럼 밑둥치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져 나갔으나 자생 동백숲의 나무들은 전혀 그렇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위로 쭉 뻗어 있다.


△찾아가는 길

창원.마산에서는 14번 국도를 따라 진주쪽으로 접어들지 말고 계속 달리면 된다. 진주.사천 쪽에서는 33번 국도를 타고 오다 고성에서부터 14번 국도에다 포개면 그만이다.
신거제대교를 지나 오른쪽 지방도로 접어들어 청마 유치환의 생가를 지나 죽림해수욕장을 거쳐 학동에 이르러도 괜찮고, 사등면을 지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연휴양림을 지나 학동으로 가도 된다.
하지만 이왕이면 신현읍을 지난 다음 계속 14번 국도를 따라 장승포.지세포를 거쳐 와현.구조라 해수욕장을 먼저 들르는 게 좋겠다. 그 다음 학동몽돌해수욕장을 거쳐 자생 동백숲에서 노닌 다음 14번 국도의 종점 명사해수욕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여차해수욕장까지 돌아보면 아주 훌륭하게 거제도 해안선 일주를 한 셈이 된다. 거제섬을 나올 때는 1018번 지방도를 타고 거제.둔덕을 지나면 된다.
자동차가 있으면 해안일주에는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아끼려면 배편이 낫다. 마산과 진해에서는 자동차나 버스보다 배편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진해여객터미널(055-542-1366)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평일에는 1시간 40분(오후 3시 20분)마다, 주말에는 1시간 30분마다 배를 내보낸다. 마산여객터미널(055-246-8301)에서는 오전 8시와 10시 30분, 오후 1시 30분과 4시에 배가 나간다.
마산남부시외버스터미널(055-247-6395)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34분까지 20~30분 간격으로 버스편이 있으며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에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30~40분마다 한 대씩 하루 20차례 버스가 오간다.
신현읍에 내린 다음에는 남부행 시내버스를 타면 구조라와 망치.학동까지 손쉽게 갈 수 있고 쓸 돈이 넉넉하다면 택시를 타도 말릴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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