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2013년 연말의 승자도 CJ E&M이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이어 지난 12월 20일 종영한 <미생>까지. 이번엔 영화마저 대박이다. 10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국제시장> 이야기다.

대기업 자본이 만들었다고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겠으나, 진보·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조차 '미생' '미생'이니 CJ의 문화적 영향력·지배력이 대단하긴 한 것 같다. <국제시장>은 좀 다르지만 <미생>과 <응답하라>에 대한 열광은 성향과 처지를 가리지 않았다. 세상은 이제 두 개의 선택지만 남은 듯하다. 미생과 완생. 비정규직과 정규직. 잉여로 살 것인가 주인공으로 살 것인가. <미생> 마지막회. 장그래는 말한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응답하라>는 장그래가 꿈꾸는 완생으로서 삶을 펼쳐 보인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 의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 메이저리거 등 하나같이 번듯한 성공을 이룬 이들뿐이다. 시련도 있었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현재 안락한 자리에서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추억거리일 따름이다. 그렇다. 완생이 되려면 이 정도 스펙과 윤택함은 갖춰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미생과 생존경쟁에서 승리해 기어이 "그 길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연합뉴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이 <한겨레>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가혹한 직장생활과 따뜻한 휴머니즘을 결합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는 <미생>은 사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얼핏 자본의 모순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듯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자본의 질서 안이다. 원인터내셔널 구성원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은 직장 바깥, 자본 외부에서 펼쳐질 수 있을 다양한 실험적 삶에 대해 상상할 여지를 차단한다". 심지어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합법적 수단마저 상상을 불허하는 <미생>이다. 왜 드라마는 직장 내 차별과 횡포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노동조합을 거론조차 않을까. 원작에 담긴 쌍용차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삭제하면서까지 말이다.(참고로 CJ는 삼성과 같은 대표적 '무노조 기업'이다.)

급기야 <국제시장>은 이만하면 살 만한 나라 아니냐고 마취제를 놓는다. 풍요만 가득할 뿐 미생 따윈 아예 존재도 안하는 세상 같다. 주인공 덕수 말대로, '힘든 세상 풍파'는 이미 다 부모세대가 자식세대 대신 겪어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CJ는 '창조경제'를 사시처럼 떠받들어온 기업답게 영화 자체로 처세의 극한을 보여준다. 박근혜 시대에 바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헌사. 왜 하필 지금 시점에 두 부녀의 신앙인 애국주의 선동으로 중무장한 영화였을까.

어쨌거나 이미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여론 떠보기에 들어간 바,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조만간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될 것 같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탈세·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항소심에서 3년 감형)을 선고받아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수감 생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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