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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보니 알겠어요 평화로워서 더 아름답다는 말

[토요 동구 밖 생태·역사교실] (31) 거제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5년 01월 06일 화요일

2014년 12월 20일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과 함께하는 토요동구밖 역사탐방 교실 마지막 나들이는 거제로 떠났다. 사람들은 거제 하면 두 가지 색깔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최대 조선단지와 풍경이 무척 아름다운 섬으로. 이 둘은 상반되는 이미지로 구분이 뚜렷하면서도 섬이기 말미암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거제는 섬이었기 때문에 아픈 역사가 유독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구조라·지세포와 장승포 농소 일대는 일본인 거류지와 어업이주촌이 들어섰던 곳이다. 그들이 떠나면서 남긴 자취들이 지심도를 비롯해 곳곳에 모여 있다.

6·25 전쟁 때 들어선 포로수용소 역시 섬이었기에 닥쳐왔던 시련이었다. 당시 5만이 채 안 되는 거제 사람들이 17만 넘는 포로들을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어림짐작으로나마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덕산·영은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 나선 이날 역사 탐방의 주제는 임진왜란이었다. 임진왜란조차 거제에서는 두 가지로 나뉜다. 이순신 장군 최초 승전인 옥포대첩과 조선 수군 유일 패전 칠천량해전이 공존하고 있다. 이 두 해전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다.

거가대교가 들어선 덕분에 거제 가는 길이 무척 짧아졌다. 전에는 두 시간은 족히 걸려야 했으나 이제는 1시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때는 창원이고 진해였으나 이제는 부산 땅이 돼 있는 가덕도를 지나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 터널을 지나니 곧바로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겨울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앞서 휴게소에 해당함직한 가덕해양공원에 들러 거가대교를 배경으로 근사하게 기념 촬영도 했다.

옥포대첩기념관은 체험학습으로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지만 볼거리가 그다지 풍부하지는 않다. 10~2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돌고도 시간이 남을 정도다. 아주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도록 세심하게 문제를 냈다. 언제나 그렇듯 건성으로 보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몰랐던 것들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어디를 가장 먼저 침입했는지조차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옥포대첩기념관에서 아이들이 임진왜란 때 사용된 무기를 살펴보며 미션 수행을 하고 있다.

첫 문제는 옥포대첩기념관이 무엇을 본뜬 모양인지 물었다. 학익진 모형은 모두 몇 척으로 이뤄져 있는지 묻는 문제는 좀더 세밀하게 따져보라고 준비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탄 배가 물살에 빨려들어갈 때 백성들이 구해내는 장면에 쓴 도구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문제도 있다.

아이들은 기념관 건물 앞에서 도대체 무슨 모양인지 머리를 맞댄 채 고민을 거듭했다. 창문이 있는 건물 같다고 했고 그냥 보기 좋은 모양이라 적기도 했다. 정답은 판옥선. 판옥선과 왜선의 차이점을 묻는 문제도 있는데 왜선은 판옥선보다 아래쪽이 좁아 빠르기는 하지만 회전할 때 자칫 잘못하면 뒤집어지고 판옥선에 대한 근접 공격이 어렵다는 설명도 찾아 달았다. 아~! 물살에 빨려드는 이순신 장군을 구한 도구는 사조구(四條鉤)였다. 이름을 찾아낸 친구들이 환호했다.

아이들은 50분가량 뛰고 달리면서 답을 찾아 적었다. 문제풀이를 하면서 모르던 사실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신이 났다. 특히 전쟁이 끝난 뒤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원균도 일등공신이 됐다는 점에 대해 다들 놀라워했다. 원균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항상 이순신 반대편이었기 때문이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언제나 객관적이고 옳다고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서 원균이 대패한 칠천량해전공원으로 옮겨갔다.

칠천량해전공원과 전시관은 들어선지 오래지 않다. 옥포대첩기념공원은 1996년 세워졌지만 칠천량해전공원은 2013년 만들어졌다. 이긴 역사를 통해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진 역사에서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칠전량해전공원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것이다. 400년 전 피로 물들었던 칠천량 바다를 바라보며 무장해제한 채 앉아 있는 어린아이 모습 조형물은 평화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동영상을 가장 먼저 봐야 한다. 그래야 전체가 더 쉽게 이해된다. 팩트와 가상을 적당하게 섞어 재미있게 만들었다. 뻔한 줄거리지만 묘하게 마음을 아리게 하는 힘이 있다. 아이들은 죄다 동영상에 집중한다. 면천을 받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노비 도치가 주인공이다. 도치는 결국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칠천량해전에서 그렇게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최소 1만 명이다.

거제로 역사탐방을 떠난 덕산·영은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칠천량 좁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김훤주 기자

영상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남편이 탄 폭탄을 실은 배가 이순신 장군이 탄 배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입고 있던 치마를 벗어 흔들어 다른 쪽으로 가게 하고는 남편이 탄 배가 자폭하는 <명량> 영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 <명량> 감독이 여기를 답사하며 이 영상물에서 그런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상물을 본 뒤 전시관을 돌면 모든 것이 한결 쉽게 눈에 담긴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당시 군사들이 입었음직한 옷을 번갈아 입어보느라 정신이 없다.

밖에 나오면 언덕 아래로 칠천량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그저 웃고 떠든다. 모두 눈감고 400년 전 이 좁은 바다가 피바다가 되도록 1만이 넘는 시체가 둥둥 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했더니 눈을 감은 아이들이 부르르 몸서리를 친다.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 앞에 있는 어린 아이 모양 조형물. 천진난만하게 뒤로 손을 짚고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전쟁은 이기든 지든 재앙이다. 우리가 전쟁 유적지에서 배울 것은 이긴 자부심도 진 수치심도 아니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가 왜 평화를 지켜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왜 배우느냐 물으면 아이들은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거울로 삼기 위해서라 한다. 이론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역사를 통해 배우기는 하지만 바로잡는 반면교사로까지 삼지는 못한다. 잘못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인간이고, 그런 인간이 만들고 남기는 자취가 역사인지 모른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아이들이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글로 풀어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임진왜란과 이순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글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친구의 글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에서 봤던 동영상의 주인공, 노비 도치의 죽음을 두고 쓴 글인데 읽다 보니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에서 아이들이 임진왜란 당시 군복을 입어보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싸우고 전쟁을 하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사람이 죽는 것이 얼마나 슬픈지 느끼게 된다. 가족을 위해 무서운 것도 무섭지 않은 그런 아빠를 보면서 감동했고 부러웠다. 나도 그런 아빠 같은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끝>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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