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주요 일간지들 1면은 양떼로 도배가 됐다.

1년 전 이맘때 말들이 뛰어 놀았던 그 지면이다. 이들 사진은 언뜻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다 다른 사진이다.

신문들의 노력도 대단했다. 어떤 신문은 강원도 목초지에서 찍었고 또 어떤 신문은 민통선 인근이나 남해에서 찍었다. 뿐만 아니다. 새해가 밝아오는 역동적인 장면 연출을 위해 해 뜨기 전 새벽부터 촬영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지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새해 1면을 장식할 사진을 찍은 노력과 열정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사진들이 난감하다.

우선 아직 양의 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십이간지는 음력을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음력 1월 1일은 아직 멀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언론들은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신문 지상마다 양의 해라고 규정하고 양떼 사진을 크게 냈다. 이 정도면 집단적 최면에 가깝다.

그리고 내가 난감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도대체 양떼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 작년엔 말 사진, 올해는 양 사진을 찍었으니 내년엔 동물원에서 원숭이 사진을 찍을 건가? 어쩌면 더 좋은 원숭이 사진을 위해 어떤 신문은 일본으로, 다른 신문은 마다가스카르로 떠날지도 모른다. 대단히 비장하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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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식의 신문 만들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건지 궁금하다. 지난해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오는 해에 대한 양질의 분석 없이 '지는 해', '일출', '새벽 양떼'를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식의 가짜 감성과 희망을 심는 것이 언론이라면 그건 죄악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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