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 청소년 역사문화 탐방] (1) 지역특성 맞춤 프로그램(상)

경남도민일보는 2013년에 이어 2014년에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 경남 지역의 역사·문화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남도교육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모두 열일곱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 입학을 중심으로 삼아 짜여 있다. 수능 시험은 전국적인 것이나 세계적인 것만 다룬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학원도 다들 지역적인 것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자기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나라 사랑 청소년 역사문화 탐방'은 이런 현실을 조금이나마 타개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지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그러면서도 사실은 지역 차원에서 볼 때 나름 중요한 의미를 띠는 현장을 찾고, 널리 알려져 있는 역사나 문화재를 탐방하는 경우에도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새겨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테면 합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나 있는 해인사를 찾아도, 팔만대장경이라는 뻔한 주제가 아니라 거기에 가야산 여자 산신(지모신地母神) 정견모주를 모신 사연을 알아보고 고대 합천의 가야 세력을 생각해 보는 식이다.

이를 위해 경남도민일보는 경남 지역 열여덟 시·군마다 그 특징과 개성에 걸맞게 둘러보는 일정을 마련했다. 물론 이번 나라사랑 탐방이 모든 지역에서 행해지지는 않았다. 지역별로 학교별로 참가 여부와 탐방 대상을 자유롭게 정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방 지역은 김해·남해·하동·창녕·통영·창원·합천·함양·고성·밀양·진주 열한 곳이 됐고 참가 학교는 김해경원고·남해정보산업고·하동고·창녕영산고·통영동원고·창녕남지고·창원마산고·합천삼가고·산청덕산고·고성철성고·밀양밀성고·의령여고·진주진양고·창원태봉고·사천경남자영고 열다섯 군데가 됐다.

탐방 원칙은 이랬다. 아이들이 흥미를 보일 만한 역사 문물이나 문화재는 실감나는 설명과 더불어 해코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손수 만져보도록 했고 박물관이나 건물 유적처럼 동적이지 못한 대상 지역에서는 작으나마 선물을 걸고 미션 수행을 하게 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능동성과 적극성을 띠도록 했다. 전체를 되짚어보는 과정에서는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핵심만이라도 기억에 남도록 했으며 재미를 더하기 위해 '도전! 골든벨' 형식을 빌려썼다.

이에 경남도민일보는 이번 나라사랑 청소년 역사문화 탐방을 네 차례로 나눠 싣는다. 처음과 두 번째에는 열여덟 지역마다 실정에 맞게 구성한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세 번째에서는 자기가 사는 고장을 탐방한 학교 학생들의 일정을 담고 마지막 네 번째에서는 자기 사는 데를 벗어나 이웃 고장을 찾은 학교 학생들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거제 : 사등성~가배량성~거제향교~거제관아~옥포대첩기념공원~칠천량해전공원.

거제는 예로부터 바다에서 침략해오는 왜구(왜적)에 맞서는 해상 방위 요충이었다. 그래서 곳곳에 성곽이 스물이 넘게 있다. 평지성인 사등성은 고대 독로국의 도읍이라 전해오는데 온전하게 남은 성벽이 많은 데 더해 치(雉)나 옹성 따위 방어용 시설도 제대로 남아 있다. 또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영 하면 모두 통영을 떠올리지만 그에 앞서 통제영이 설치돼 있었던 데가 바로 거제 가배량성이었다.

거제는 임진왜란에서도 승패와 희비가 함께하는 지역이었다. 이순신의 옥포해전은 조선 수군 최초 승전으로 빛나고 원균의 칠천량해전은 조선 수군 유일 패전으로 1만 넘는 병사와 함선 대부분을 바다에 잠기도록 했다. 또 옥포해전에서 바다로 빠지는 퇴로가 막힌 왜군은 뭍으로 진국해 결국 고현읍성이 함락되는 좋지 못한 결과를 빚기도 했다. 일본의 대륙 침략 의지는 그 뒤로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한국정벌론과 20세기 일제 식민지 강점에 이어 21세기에도 아베 총리 등 극우세력이 과거사 반성을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거창 : 정장리최남식가옥~문바위~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불입상~수승대~황산마을·정온고택~거창박물관.

거창은 군 단위 지역으로는 보기 드물게 시민운동역량이 뛰어난 고장이다. 이를 알려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최남식 가옥이다. 일제 말기부터 농민운동을 벌여온 최남식 어른이 살던 집인데 네덜란드 전원주택을 모델로 삼아 1947년 지었다. 최남식 어른은 지역 문화재에도 크게 관심을 가져 꾸준히 모아왔는데 1983년에는 가진 문화재를 내어놓고 지역 박물관 건립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1988년 들어선 거창박물관은 군 단위 지역 최초 '공립'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거창은 바위로도 유명하다. 질좋은 화강암이 나는 3대 산지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바위로는 가장 큰 문바위는 이런 면에서 거창의 상징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바위에다 옛 사람들이 염원을 담아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불입상을 새겼다. 명승으로 이름난 수승대도 이런 바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편 수승대는 갈천 임훈과 요수 신권으로 대표되는 지역 양반들 세력 다툼의 현장이기도 했다.

◇고성 : 마암면석마~옥천사~학동마을 옛담장~상족암~고성박물관.

마암면 석마는 한반도 남쪽 농경문화 한가운데 남아 있는 북방 기마문화의 자취라서 흥미롭다. 옛날의 말은 오늘날 자동차에 해당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할 때 실제 말을 죽여 그 피를 바치기도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돌을 깎아 만들거나 흙으로 빚어 만든 것으로 대체했다. 아주 오래된 돌말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 마음에는 오랫동안 신앙 대상으로 살아 있었다. 고성을 일러 소가야의 옛 땅이라 하지만 고성박물관을 둘러보면 고성이 결코 작은(小) 가야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성이 '곧은' 가야 또는 '굳은' 가야였다고 알려주는 유물들이 잘 갈무리돼 있는 것이다. 지금 지명 고성(固城)이나 별명 철성(鐵城)도 모두 '곧다' '굳다'로 통한다.

북방 기마문화의 자취를 보여주는 고성 석마마을 암컷 돌말.

◇김해 : 율하유적공원~화포천~봉하마을~분성산성~김해향교.

김해는 수로왕과 허왕후만의 고장이 아님을 율하유적공원은 말해주고 있다.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곳곳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공원에서는 말로만 듣던 고인돌 내부 구조를 몸소 눈여겨볼 수 있다. 여기 고인돌은 자기 둘레에 둥글거나 네모나게 촘촘하게 돌을 박아 영역을 표시했다. 영역이 넓을수록 살아생전에 권력이 센 사람이었는데, 이는 전라도쪽과 다른 경상도 고인돌의 특징이다. 전라도는 영역 표시 대신 화려하고 귀중한 보석 따위를 껴묻거리로 많이 집어넣는 방식으로 죽은이 생전 권력의 크기를 표현했다.

◇남해 : 금산 보리암·부소암~남해향교~이순신영상관~이락사~남해유배문학관~정지석탑.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부분이다. 부소암은 여태 개방되지 않다가 2013년부터 사람들 발길을 맞고 있다. 30m는 넘게 떨어져야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올 정도로 커다란 바위인데 중국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와 관련된 전설이 어려 있다.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거둔 노량해전으로 이름나 있지만 그에 앞서 고려시대에도 왜구를 크게 무찌른 뜻깊은 장소였다.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관음포 앞바다는 그에 앞서 고려 우왕 9년(1383) 해도원수 정지 장군이 왜구 함선 17척을 깨뜨리고 2500명을 숨지게 한 전승지였다. 정지 장군의 관음포대첩은 화포를 사용한 첫 해전이기도 하다. 남해 사람들은 왜구를 물리친 정지 장군에 대한 고마움을 석탑에 담았다.

멀리 떨어져야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큰 남해 금산 부소암. 중국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김훤주 기자

◇밀양 : 삼랑진역급수탑~작원관~수산제 수문~예림서원~월연대~밀양박물관.

삼랑진역에는 경부선에 유일하게 옛 급수탑이 남아 있다. 기차가 석탄을 때어 끓은 물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움직이던 시절 모자라는 물을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삼랑진역에 머물던 기차가 많았기에 들어선 시설물이다. 오래전부터 밀양십경 가운데 하나로 꼽혀온 월연대이지만 그 아름다움이 근래에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해 기억에서 많이 지워졌다가 2013년 문화재청이 국가 지정 명승으로 삼았다. 밀양박물관에는 밀양독립운동기념관도 들어 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별도로 독립운동기념관을 두는 데는 밀양뿐이지 싶다. 그만큼 밀양 (출신)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해방을 위해 많이 나섰다는 얘기다.

◇사천 : 비토섬·월등도~다솔사~사천향교~사천읍성~선진리성·조명군총~대포·종포갯벌.

다솔사는 만해 한용운이 독립운동을 벌이고 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쓴 절간으로 이름나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다솔사와 관련해 김범술이라는 스님을 더 기억해야 마땅하겠다. 그이가 없었다면 다솔사가 불교계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지도 않았을 테고 따라서 한용운도 김동리도 다솔사에 올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선진리성은 왜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앞서서는 우리 전통 성곽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선진리성을 근거 삼아 버티고 있었다. 1598년 조명연합군은 사천읍성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친 기세를 몰아 선진리성 왜군을 들이쳤지만 군사가 많았음에도 어처구니없이 패했다(당시 죽은 조명 군사들의 시체를 한 데 묻은 것이 바로 조명군총이다). 이로써 기운을 얻은 왜군은 전라도 순천에 있던 왜군과 힘을 합쳐 이순신·진린의 조명연합수군이 버티고 있는 남해 관음포 앞바다로 500척이 넘는 대규모 함대를 몰고 나가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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