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박말봉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

박말봉(57) 창원시청 감독은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개인 통산 100승이 그것이다.

이우형 전 국민은행 감독과 김창겸 울산미포조선 감독이 리그 100승을 달성한 적은 있지만 한 클럽에서 100승을 채운 것은 박 감독이 처음이다.

박 감독은 지난 2005년 창원시청 팀 창단 이후 9년째 원클럽맨이다. 단체장 입김이나 정치적 외풍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 팀에서 오랫동안 사령탑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저도 사람인데 왜 욕심이 없겠어요,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 싶고 우승에도 도전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내려두고 좋은 선수들과 좋은 축구를 해보자고 다짐했죠. 그러다 보니 큰 어려움 없이 지금껏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적도 준수했다. 창원시청은 지난 2006년 내셔널선수권 우승에 이어 2009년에는 리그 통합 우승의 역사를 썼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도 했다.

짜임새 있는 축구로 정평이 난 그는 자율축구 신봉자다. 그가 선수들에게 자율을 강조한 데는 '풀뿌리 축구'로 대변되는 학원 축구 경험이 한몫했다.

1977년 창원 연고 실업팀 동양기계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창원 상남초, 토월중, 창원기계공고 축구팀도 맡았다. 동양기계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모두 박 감독이 창단한 팀이다.

지난해 12월 29일 박말봉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이 내셔널리그 개인통산 100승을 기념해 받은 트로피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당시만 하더라도 창원에는 변변한 축구팀이 없었어요. 토월중 축구부를 창단했는데, 밑에서 올라오는 선수가 없어 상남초를 또 만들었습니다. 이후 연계육성을 위해 창원기공을 창단하고, 2005년 3월 창원시청 팀을 창단하면서 창원지역 축구 계보를 완성했습니다. 우리가 운동할 때만 하더라도 축구부는 '기합'과 '혹독한 합숙'의 대명사였어요. 지도자나 선배에게 눌려 주눅 든 상황에서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없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한 만큼, 선수를 대할 때 '강요'란 단어를 아예 지워버렸습니다."

그는 지도자와 선수 사이가 수평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때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어찌 보면 그의 축구 철학은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형님 리더십'과 많이 닮았다.

박 감독은 "홍 감독보다는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형님 리더십은 아무래도 내가 원조"라면서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 팀을 이끄는 철학은 홍 감독의 리더십과 닮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창원시청은 경기 당일 팀 미팅이 짧기로 유명하다. 핵심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수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하프 타임이 길어야 10분이에요. 전반전을 뛴 선수들이 쉴 시간인데, 그때 감독이 길게 이야기해봐야 선수들에게 크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잘한 부분만 칭찬해주고 후반전에 신경 써야 할 부분 몇 가지만 짚어줘요."

자율을 강조하지만 방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팀 분위기를 흩트리거나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선수와는 함께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언젠가 선수들 사이에 외제차를 타는 붐이 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선수들을 하나 하나 불러 왜 값비싼 외제차가 필요한지 묻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모두 돌려보냈어요. 며칠 뒤 보니까 숙소 주차장에 외제차가 모두 사라졌더군요."

박 감독은 대학이나 고교를 졸업하고 오는 실업 초년생에겐 절대 통장을 맡기지 않는다. 대신 선수 부모님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월급통장을 관리하라고 당부한다. 길지 않은 선수 생명을 인지 못하고 월급을 탕진하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잔소릴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돈 쓰는 법에 대해선 입이 닳도록 선수들에게 주문한다"면서 "얼마 전 몇 년간 꾸준히 모은 월급으로 자기 명의 아파트를 샀다는 선수를 보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감독이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자 선수들도 많이 변했다. 고민을 들어주는 감독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제지간 이상으로 끈끈함이 넘친다.

그래서 창원시청에는 박 감독과 같은 원클럽맨이 유독 많다. 최명성, 김만희, 하재훈, 김창휘, 이상근이 창단 때부터 창원시청과 함께한 멤버다.

김창휘와 하재훈 등 일부는 프로 지명을 받아 몇 년간 팀을 떠나 있었지만, 대부분 친정팀인 창원으로 돌아왔다.

훈훈한 팀 분위기와 달리 창원시청은 유독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창원시의 운동부 축소 방침에 따라 예산이 가장 많은 축구팀이 직격탄을 맞았다.

성적은 곤두박질했고 시의 해체 압박이 더욱 거세졌다. 박 감독과 선수단이 똘똘 뭉쳐 내셔널리그 최다 연승인 8연승을 구가하며 겨우 반전에 성공했다.

해체 직전까지 갔던 축구단은 예산절감 등 자구책을 내놓고 1년간 팀 존치 약속을 받아냈다.

박 감독 책상 위에는 제일 먼저 후원자 명단이 눈에 띄었다. 후원도 자구책 가운데 하나였다.

박 감독과 창원시 축구협회 임원들이 발로 뛰며 매월 10만 원을 창원시청 축구단에 지원하는 후원자를 모집 중이다. 현재 50여 명에 불과하지만 오는 3월 시즌 초반까지 100명을 확보하는 게 1차 목표다.

박 감독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후원과 관련해) 솔직히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좋은 뜻에서 동참해주는 분들이 많아 고맙다"고 전했다.

그는 창원시청 외에도 풋살 국가대표팀(2006~2007), 비치사커 국가대표팀(2008), 동아시아대회 국가대표팀(2013) 등을 이끌며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지도자 인생을 마감하기 전 이루고 싶은 목표는 창원시청 소속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것이다.

박 감독은 "고교 유망주를 데리고 한 4년만 가르치면 충분히 내셔널리그에서도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키운 제자 가운데 현 국가대표 수비수 김창수(가시와 레이솔)가 있는데, 제2의 김창수를 반드시 키워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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