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좀 들어보세요] (1) 이경수 대림차 해고자복직투쟁위 의장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 현장에는 한 가지 공통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소통 부재'라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정책 발표나 사업 시행,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단체 행동과 요구. 이 사이에는 적극적인 소통을 갈구하는 목소리, 그에 반한 정형화한 소극적 대응 또는 불통이 존재합니다. 이슈 현장은 곧 '소통 부재의 현장'입니다. 그 현장에서 참된 소통에 대해 고민해봅니다.

지난달 31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대림자동차 창원공장 옆. 정문을 지나 작은 하천을 건너면 컨테이너 하나와 비닐하우스 천막이 놓여 있다.

주변에는 대림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각종 사회적 부조리를 지탄하는 내용을 담은 펼침막이 이곳저곳 나붙어 있다. 지난해 5월 시작한 해고자 복직 투쟁 당시 설치된 거점이다.

난방을 돕는 가스가 떨어져서인지 컨테이너 안은 냉기가 가득했다. "이제 이 컨테이너도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들어서자마자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아직은 아니죠. 최종적으로 복직이 확정될 때까지는 접을 수가 없습니다."

대림차 창원공장 옆 컨테이너에서 만난 대림자동차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이경수 의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아직 복직 단정하기는 이르다" = 이경수(46) 대림자동차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은 아직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대림자동차 사측이 해고자 복직 의사를 밝혔음에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복직 투쟁을 벌이는 해고자들에게 낭보가 전해졌다. 대법원이 '지난 2009년 대림자동차공업㈜이 한 정리해고는 무효'라며 해고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측의 정리해고 요건이 충분한데다 해고 회피 노력도 인정된다"고 판결한 1심 판결을 뒤집고 "해고대상자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을 갖추지 못해 해고는 무효"라는 2심 판결이 나온 뒤 딱 11개월 만이었다. 대법원은 상고 비용도 패소한 사측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해고자 12명이 복직할 길이 열렸다. 대법까지 '해고 무효'로 판결한 마당에 회사로서는 해고자 복직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럼에도 이 의장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단다.

이는 지난 1991년 입사 이후 사측이 숱한 정리해고 과정에서 보인 행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게 지난 2010년 해고자들이 벌인 대림차 창원공장 본관과 옥상 점거 때 일이다. 이 의장 주도로 그해 3월 1일부터 19일까지 벌어진 점거 농성으로 해고자 47명 중 19명이 재입사하게 됐다. 해고자 47명 전원 복직을 목표로 한 점에서 자본과 권력에 무릎을 꿇은 셈이었지만 제2 쌍용차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판단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문제는 재입사자들에게 행한 사측 태도였다. "(회사는) 19명 중 11명을 8개월 동안 교육을 보냈습니다. 이른바 사상·정신교육이나 마찬가지죠. 11명은 의도적으로 서울·경인·부산 등지 영업직으로 전환배치도 했고요. 생산직에서 줄곧 일하다 영업직으로 발령받고 사표 쓴 사람도 3명 있어요. 지금도 울산에 1명, 안산에 1명, 중국에도 한 명 있는 것으로 압니다. 회사가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라 종용한 것이죠."

대법 판결과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해고자 복직 촉구 기자회견 이후 회사는 2일까지 사측·해고자 면담일을 정해 알려줄 것을 유선으로 통보한 상태다. 그러나 지금도 들리는 소문은 그리 좋지 않다.

"회사가 정리해고자를 복직시킨 다른 사업장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복직 안 시키고 임금만 주는 사례를 찾고, 복직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낼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요. 이왕 복직시킬 의사를 밝혔으면 '인간적인 신뢰'를 보였으면 하는데 참…."

◇사람을 존중하는 노사관 절실한 사회 = '인간적인 신뢰'. 입사 이후 23년 동안 이 의장이 회사 측에 바라는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다.

대림차는 설립 이후 크고 작은 정리해고를 4차례 단행했다. 지난 1990년 노조 탄압을 통해 200명에 달하는 이들을 해고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도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으로 180여 명, 본사 창원 이전으로 80여 명이 회사를 나갔다. 2009년 250여 명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지난 1991년 정식 입사한 이 의장은 1990년부터 비정규직으로 일해 와 그간 사정을 잘 안다. "예부터 대림이 강성노조로 이름을 알렸는데 내용을 알고보면 회사가 그리 만든 측면이 큽니다. 임금협상을 하면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때까지 도통 사측안을 내놓지 않아요. 회사 일하면서 사측 안이 나온 건 3차례에 불과해요. 협상 진행이 잘 안 되다보니 파업까지 가는 게 일상화한 것이죠."

이 의장은 이 같은 사측의 저변에는 극심한 노조 혐오가 깔려 있다는 진단이다. "대림차 정리해고에서 드러났듯이 대림은 그룹사 차원에서 노조탄압이 극심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동안 대림산업, 고려개발, 삼호 등등 민주노조를 다 깨뜨렸어요. 노조와 조합원들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이러니 사원들을 잘 설득해나가면 쉽게 풀릴 일도 어렵게 꼬이는 것이죠."

이번 대법 판결도 그 이전에 해고자 처지를 인정하고 대화로 해결했으면 회사가 입을 손해는 더욱 적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있다.

"항소심에서 판사가 인사고과 프로그램을 감정하니 객관성에 의구심이 있다고 판단해 조정을 권유했어요. 우리는 조정에서 확인하자 했지만 사측은 안을 내놓지 않았어요. 그룹 차원에서 무조건 법적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것이죠. 지난여름 서울 그룹 사옥 앞 투쟁이 장기화할 때도 금속노조에서 교섭 공문을 보냈어요. 이때 대림차 기업별 노조, 저, 회사 임원 이렇게 셋이 만나 대화를 통한 '합의'로 해결을 타진했죠. 사측에서는 내부 논의를 통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연락이 없었죠. 역시 그룹에서 대법까지 보겠다 한 것이죠. 회사로서는 대화를 통한 합의를 하지 않은 게 더 큰 이미지 타격으로 돌아온 셈이잖아요."

이는 결국 회사가 '인간적인 신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회사는 인간미를 가져야 해요. 대림차는 제가 입사했을 때에 비해 인원이 3분의 2가 줄었어요. 그러니 노동강도는 높아지는데다 노조 약화로 말미암아 일방적인 인사 전황에 예전에 없던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지고 그에 대한 압박이 이뤄진대요. 그래서는 안 돼요. 직원은 물론 퇴사하거나 해고된 이들도 품어안을 '인간미'가 회사에 더 필요하죠."

◇인간성 회복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끌어 = 이 의장은 해고자 신분이지만 주변에 오토바이나 자동차 관련 기계부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에게는 꼭 대림차 상품을 권한단다. 자신이 가진 복직 의지는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는 회사가 노조나 사원을 대하는 관념을 바꾸어야 더욱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도 단지 소통을 하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소통이 이뤄져야 하고요. 회사가 사원 개개인의 능력을 믿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지켜봐 준다면 사원들도 회사를 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의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대림차의 인간적 변화에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를 사원을 보다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만 가지면 충분하리라 봅니다. 정리해고도 결국 노조와 노조에서 활동한 사람이 싫어서 벌인 사회적 살인 행위였잖습니까. 회사가 불신을 버리고 사원이든 노조 활동가든, 해고자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간적인 대우만 해준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회사 이미지 또한 제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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