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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북소리로 곽재우 장군 불러볼까

[토요 동구 밖 생태·역사교실] (30) 의령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경남 열여덟 시·군 가운데 의령은 사는 사람이 3만이 채 안 되는 지역으로 규모가 가장 작다. 이런 의령에서 유명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사는 사람이 많아야 유명한 인물도 많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의령이 인구가 가장 적은데도 가장 내세울 만한 것이 사람이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12월 6일 두산중공업이 마련한 토요 동구밖 역사탐방은 진해 웅동·동부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의령 출신 인물들을 만나러 갔다.

이날은 아침부터 내내 찬바람이 쌩쌩 불어댔다. 따뜻한 안방에서 뒹굴뒹굴하면 딱 좋을 그런 날이다. 추운 날씨에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역사탐방에 나선 친구들이 대견했다. 이런 날은 되도록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현장은 가볍게 둘러보는 식으로 하는 진행이 맞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찾아가는 데는 부림면 입산리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백산이 누구인지 아는 친구가 당연히 없으리라 생각하고 안희제 선생이 어떤 분인지 얘기를 들려줬다. 백산 선생은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백산무역주식회사를 꾸려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썼을 뿐 아니라 교육·언론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만주까지 건너가 활동한 대단한 독립운동가다.

'백'범 김구 선생과 '백'산 안희제 선생 그리고 '백'야 김좌진 장군을 두고 삼백이라 한다. 이 가운데 백범과 백산을 콕 집어 양백이라 일렀을 만큼 안희제 선생이 유명하다고 했더니 신기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백범과 백야는 이름을 아는 친구가 제법 있지만 백산은 그렇지 않았다. 교과서와 보도매체가 백산을 거의 다루지 않는 탓이다.

안채와 사랑채 차이점도 찾아보고

이런 얘기를 하는 사이 버스는 백산 선생 생가에 도착했다. 백산 생가는 태어난 인물이 아니라 구조의 독특함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이 돼 있다. 그런 만큼 생가는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채는 짜임새가 아주 별나다. 다른 한옥 여느 안채와 달리 방들이 여럿 포개지듯 들어 있고 다락도 따로 있는데 독립운동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짐작이 들게 한다. 아이들은 먼저 대청마루에 올라 양쪽 방들에 들어가 보고 다락까지 둘러봤다.

뒤에 보이는 기와집이 백산 생가 안채. 그 앞은 사랑채다.

밖에서는 여자가 기거하는 안채와 남자가 기거하는 사랑채가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게 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여러 답을 내놓았다. 안채는 지붕이 기와고 사랑채는 초가다, 방문 개수가 다르다, 굴뚝이 있다 없다, 의견이 분분했다. 정답은 기둥의 모양이다. 안채는 기둥이 네모나고 사랑채는 기둥이 둥글다.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동양 전통 생각에 따른 것으로 요즘과는 좀 맞지 않는 그런 의미도 있고 한편으로는 여자들이 생활하면 조심하라는 뜻으로 안채 기둥을 네모지게 만든다는 얘기도 있다는 설명을 했다. 또다른 차이는 부엌이 있느냐 없느냐다. 안채에는 부엌이 있고 사랑채에는 없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해주는 밥을 먹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좋아했다. 집이 몇 칸짜리인지 헤아리는 방법도 알려줬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한 칸이니 모두 몇 칸인지 세어보랬더니 하나, 둘, 셋, … 여섯 칸이라 답한다. 하나를 더 아는 것 자체가 모르는 것과는 차이가 나지만 이렇게 알고보면 그것이 조그만 것이라 해도 그 덕분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그만큼 많아지는 법이다.

의병운동 의미도 함께 생각해보고

다음으로 유곡면 세간리 망우당 곽재우 생가를 찾았다. 아이들은 들어서자마자 이곳은 남자, 저기는 여자, 하면서 좀 전에 배운 것을 금방 써먹는다.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곽재우 장군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실천을 중시했던 조선 시대 대표 선비인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이면서 외손사위이기도 했던 곽재우 장군은 자기 재산을 모두 털어서 의병활동을 했는데 여러분 생각에 의병 활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끌었을까? 아니면 재산이 많고 권력이 센 사람들이 이끌었을까?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한결같이 "평민들이요" 한다.

진해 웅동·동부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지난 6일 의령으로 역사탐방을 떠났다. 세간마을 정자에 있는 큰북을 아이들이 돌아가며 치고 있다. /김훤주 기자

아마도, 힘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의리있게 나선 사람들이 의병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돈이 너무 없고 지체가 낮으면 아는 바가 없고 배가 고파서도 나설 수가 없는 법이다. 곽재우 장군이 처음 의병에 나섰을 때 따른 이들은 자기 집 종 10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난해서 배를 곯는 노비와 평민들 식솔들한테 먹을거리를 주면서부터 따르는 의병이 크게 늘었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이 제법 많았다.

곽재우 생가를 둘러볼 때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둘. 500년 묵은 세간리은행나무와 600살 먹은 현고수 느티나무가 그것이다. 오래 살았고 자태가 웅장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절의 아픔과 곽재우 장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본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새삼스러운 심정으로 은행나무를 올려다보고 의병을 모으려고 북을 매달았다는 현고수로 걸음을 옮겼다.

곽재우 생가 안채 마루에 걸터앉은 아이들.

오늘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현고수 옆 정자에 들어앉은 큰북이었다. 둥~둥~둥~ 북소리 울림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줄서서 돌아가면서 북을 쳤다. 북을 치면서 아이들은 쌓여 있던 그들만의 맺힘을 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을 어르신들이 나와 기웃거렸다. 아이들의 북치기는 쉬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쓴 소감글에서 북을 치면서 너무 좋았다는 내용이 쏟아진 것만 봐도 얼마나 즐거웠는지가 짐작된다. 아이들이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이런 장치들이 좀 많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읍내 강남가든에서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정암진(=솥바위나루)에 들렀다. 정암진은 곽재우가 두 번째 승리를 거두며 육지를 통한 왜병의 전라도 침공을 차단한 곳이다. 아이들은 임진왜란 하면 바다와 성곽만 떠올린다. 강을 건너 왜군들이 쳐들어오는 것은 실감 못한다. 곽재우는 강물의 깊이가 곳곳이 다르고 진창이 많은 지형 특징을 활용해 왜적을 늪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자기와 똑같이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을 여럿 세우는 교란 전술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암루에 올라 세 발 방향 20리 안에 부자를 낸다는 전설이 있는 솥바위를 내려다봤다.

잘 몰랐던 우리지역 위인들 탐방

버스를 타고서는 오늘 돌아본 것이 어디이고 무엇인지 짚어보는 내용으로 '도전! 골든벨'을 했다. 곽재우가 의병을 모으기 위해 북을 매단 나무는 무엇일까? 안희제 선생의 호는? 여자가 살았던 건물과 남자가 살던 건물은 어떻게 구별할까? 곽재우 생가 앞 은행나무는 나이가 몇 살일까? 등등이다. 은행나무가 오래 사는 까닭은 나무가 독성을 품고 있어 다른 벌레들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인데 먹는 채소 가운데 농약을 치지 않아도 벌레가 먹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아이들이 자신있게 '배추'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배추는 벌레가 억수로 먹는다. 정답은 상추다.

버스가 출발을 하자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느냐고 여기저기서 묻는다. 역사탐방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단 말이지!!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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