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기어이 주민의 거센 항의를 무시하고 송전선로 공사 마무리 선언과 함께 시험송전을 감행했다. 한국전력은 이로써 지난 10년간의 주민과의 마찰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다. 반대 주민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커녕 최소한의 합의마저 외면한 마무리 선언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의 논리일 뿐이다. 주민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투쟁에 들어감으로써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렸다.

밀양 송전선 시험송전은 주권재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침탈로 간주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는 주거자유와 재산권보호가 근간이다. 다수 이익을 위해서 소수 이익을 말살할 수 없다는 것은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한국전력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할지 모르나 차후 국가와 한국전력 모두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전력은 사장 명의의 보도문을 통해 주민과 소통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국책사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나흘째 철탑 철조망에 매달려 극한의 투쟁을 하는 반대 주민에 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러면서 상생과 주민화합, 갈등치유를 위해 역할과 사명을 다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치유이며 누구를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가.

반대 주민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들이 오로지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며 떼쓰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전력과 정부는 지난 10년간 반대 주민을 그쪽으로 몰고 간 책임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애초에 불합리한 보상기준을 내세우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호도하며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위험 지경까지 가고 있는 생각의 다름을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여 숨통을 죄며 마녀사냥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한국전력과 정부는 이겼다. 하지만 그 승리는 독이 든 성배일 수도 있다. 역사는 약자를 억압하고 다수 논리만 지배하는 사회와 국가가 겪었던 불행을 보여주고 있다.

다수 이익과 효율을 들어 승압공사를 벌일 전국 송전선망을 따라 제2, 제3의 밀양주민은 계속 나올 것이다. 밀양은 주민을 무시한 대한민국 흑역사의 또 다른 출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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