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여성과 22년간 바이크 데이트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마산동부경찰서에 근무하는 박정도 경위라는 분이었다. 내용은 뜻밖(?)에 '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사연이었다. 지난 20일 결혼 22주년을 맞아 아내에게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보냈다고 했다. 그가 직접 글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 박정도(51)와 김동순(48)은 1992년 12월 20일 결혼했다. 22년 전 당시는 민주화 바람과 함께 많은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가꾸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당시 창원·마산 역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였지만, 수출경기 호조로 잘사는 도시로 전국에 명성 나 있었다.

나는 해병 하사로 만기 전역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안 가장이고 두 동생과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이 남달리 강했다.

아버님이 40대 초반에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홀로 삼 형제를 키우셨다. 마산 부림시장 밑에서 옷 가게 하면서 우리를 키운 장한 어머니이시다.

어머니는 나에게 군대 가서 빨리 제대하여 장가를 가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집안에 여자는 오직 어머니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해병대 군생활을 빨리 마치고 사회에 나왔다. 그리고 내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가 주선하는 선에 나갔지만 번번이 인연이 닿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내 나이 29세가 되었을 때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좋은 아가씨가 있다고 소개해 준다고 하였다. 시간과 장소를 전해듣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그런데 마침 친구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서 10년 만에 마산에 온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보내다, 그제야 오늘 아가씨와 만나기로 한 날이라는 생각이 났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급하게 갔다. 그러나 이미 약속시간은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선 자리에서 그 시간 동안 기다려 줄 여자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인연이 아니구나라며 포기하고, 약속장소에서 혼자 커피나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한곳에 시선이 꽂혔다. 웨이브를 한 검은머리 아가씨가 맞은편 자리에서 다소곳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 여자가 한순간 내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다.

나는 혼자 커피 마시는 이 아가씨가 너무 마음에 들어, 혹시나 했던 선자리 여성이 안 오기를 바랐다.

그때 아가씨가 커피를 다 마신 후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그리고 씩씩하게 말했다.

"잠시 시간 내 줄 수 없을까요? 잠시만 허락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가씨는 다소곳이 서울말로 이렇게 답했다.

"네, 그렇게 하죠."

그 답을 듣는 순간 기쁜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자리 잡고 앉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아가씨가 선자리에 나오기로 한 그 여성이었습니다. 사진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기에,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선자리에 나왔던 거지요. 20분이나 늦은 나를 고맙게도 기다려주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당연히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사실 아가씨는 제 첫인상이 썩 마음에는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 직장에 찾아가는 등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제 모습에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결혼한 지 22년이 지났네요.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바이크를 타고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베개 삼아, 그리고 산새 울음을 하모니 삼아 투어 다니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박정도 마산동부경찰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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