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상동면 115번 철탑 현장에서 농성 돌입…한전 송전탑 시험송전 예고

26일 오전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뒷산은 분주했다.

과수원 한가운데 거대하게 우뚝 선 115번 765㎸ 송전탑 현장.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밀양 단장·부북·산외·상동 4개면 마을주민 100여 명이 모였다. 철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붕뿐인 천막 2동을 치고, 냉기를 막을 깔판을 깔았다.

이곳은 철탑공사를 막으려고 주민들이 움막을 짓고 농성을 하다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 때 끌려나갔던 곳이다. 움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에 주민들은 농성을 위해 천막을 쳤다.

한국전력은 철탑 막바지 공사 중이었다. 굴착기는 평탄작업을 하고, 작업자들은 철탑 둘레 울타리와 송전탑 네 개 기둥 아래에 주민들이 올라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덧씌웠다. 경찰도 현장에 도착에 모여있었다.

한전은 밀양구간 69기 송전탑과 선로 공사를 마치고 28~29일 신고리 원전에서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시험 송전을 할 계획이다. 이날 주민들은 한전과 경찰을 향해 욕을 쏟아붓기도 했다.

03.jpg
2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공사현장에서 한전의 시험송전 중단 농성을 시작했다. 한 주민이 철탑 기둥에 둘러싸인 철조망을 잡아 당기고 있다./표세호 기자

오전 11시 30분 시험송전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10년 세월이 흘렸다. 한전은 이제 끝이라 생각하겠지만 절대 끝낼 수 없는 싸움"이라며 주민들이 다시 모여 농성을 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는 "우리는 부당하기에 끝낼 수 없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던 어르신들의 첫 마음을 지키고자 모인 것"이라며 "한전은 끊임없이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했지만 어르신들은 첫 마음 그대로다"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 싸워왔다. 억지나 생떼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제대로 사과하고 피해대책을 위해 대화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과지 4개 면별로 주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부북면 평밭마을 최고령 주민인 김길곤(83) 할배는 "우리가 돈을 달라하나.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게 놔두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줘야 하는데 우리를 데모꾼이라고 몰아세운다. 정부가 하는 꼬라지가 이래서는 안 된다"며 "고생해서 일군 터전을 후세에게 온전하게 물려주려는 어머니 마음, 모성애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04.jpg
2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공사현장에서 한전의 시험송전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표세호 기자

상동면 여수마을 김종찬(70) 할배는 "집 앞에 몇백만 원 미끼를 건 낚시바늘이 있다. 절대 여러분은 그 낚시에 손을 대지 마라. 사람이 살면서 후회할 일 하면 안 된다. 철탑 전기흐를 때까지 후대에 피해가 간다. 물려줄 것은 재산과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느냐 역사 뿐이다"고 말했다. 할배는 한전의 보상을 '낚시'에 빗대 말했다. 송전선로 밀양구간 경과지 마을 3600여 가구 가운데 260여 가구가 한전의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날 농성에는 송전탑 반대 투쟁을 벌이는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밀양을 거쳐 북경남변전소로 보낸 전기는 청도 거쳐 가는 345㎸ 송전선로로 가게 된다. 이억조(76) 할매는 "힘 모아서 함께 철탑 뽑아낼 때까지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06.jpg
2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공사현장에서 한전의 시험송전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표세호 기자

특히 경기도 여주에서 변전소 반대운동을 벌이는 주민들도 참여했다. 한전의 765㎸ 신경기변전소 후보지 결정을 앞두고 경기도 여주와 광주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여주에서 온 한 주민은 "고통받은 주민들이 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못먹고 못자고 쌀밥 먹는 게 소원이었던 삶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 어머니였기에 이렇게 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밀양과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주민은 "전국에 송전탑이 설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일어날 것이다. 밀양의 우리 교과서이고 스승, 정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은 시험송전 중단 농성돌입을 알리고, 주민들의 요구를 담은 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한전의 시험송전에 대해 "그 밑에 사람이 살고 있고, 주민들이 평생 일궈온 논·밭이 있고, 주민들에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무엇이 끝났다는 것인가. 밀양주민들은 10년간 싸움을 이렇게 끝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간 주민 2명이 목숨을 잃고, 마을공동체 해체, 사법 처리 등으로 마음과 몸이 고통받은 데 대한 한전의 사과, 각종 불법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또한 주민 재산·건강상 피해조사와 주민이주 등 대책을 요구했다.

02.jpg
초고압 변전소 반대 운동을 하는 경기도 여주민들이 2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115번 철탑 농성현장을 찾아와 힘을 보탰다./표세호 기자

특히 주민들은 정부와 한전이 신고리 3·4호기 송전을 위해 송전탑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공권력을 앞세워 밀어붙인 데 대해 '거짓말'로 주민을 속였다고 분노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공사재개 당시 신고리 3·4호기 준공시점과 전력수급을 빌미로 공사를 강행했지만 신고리 3·4호기는 시험성적서 위조 등으로 아직도 준공되지 않았고, 신고로 1·2호기 전력을 기존선로로부터 당겨와서 송전한다고 한다"며 "국가와 공기업이 주민들을 속이고 폭력을 행사했다. 희대의 거짓말 때문에 주민들은 지난 14개월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고리1호기 등 노후원전 폐쇄, 전력수급계획 변경 등 여건이 변화면 송전탑을 철거하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밀양주민들은 대화를 원한다. 일방적으로 공사 마무리를 통보할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사과와 책임있는 피해 보전만이 밀양 송전탑 사태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01.jpg
26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공사현장에서 한전의 시험송전 중단 농성을 시작하며, 철탑에 모여들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표세호 기자

회견을 마친 주민들은 송전탑으로 몰려갔다. 기둥에 철조망이 씌워져 있었지만 송전탑에 오르려 했다. 경찰이 막아서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민들은 "잡아가라"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농성은 이렇게 시작됐다. 할매·할배들은 다시 한 데서 잠을 자고, 밥을 같이 해먹으면서 자신들을 짓밟고 밀양 곳곳에 거대한 송전탑을 세운 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