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2) 한희성 경남대 사격부 감독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KT)의 스승인 한희성(47) 경남대 사격부 감독을 지난 23일 오후 창원국제사격장에서 만났다.

한 감독은 17년간 경남대 사격부를 이끌면서 숱한 영광을 함께했다. 길러낸 선수도 쟁쟁하다. 진종오가 워낙 유명한 까닭에 가려져 있지만 수많은 선수가 그의 슬하에서 사격을 배우고 성장했다.

경남대는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체전 5년 연속 공기소총 단체 우승을 차지하는 등 대학부 최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 감독은 "사격만큼은 경남대가 국내에서 서울대나 마찬가지"라면서 "1년에 8개 정도의 굵직한 대회가 있는데 경남대가 절반, 한체대가 3개 정도의 우승기를 가져간다. 우리가 더 좋은 성적을 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자부심은 선수들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다. 지난 10월에는 경찰청장기 공기소총 부문에서 종전 기록이던 1782점을 6점 경신하는 1788점을 쏴 경기대가 보유하고 있던 한국신기록을 10년 만에 갈아치우기도 했다.

지난 23일 오후 창원국제사격장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 중인 한희성 감독.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이 성적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종이표적이 아닌 전자표적으로 바뀐다. 전자표적의 가장 큰 특징은 소수점까지 나타내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점수 산정이 후했던 종이표적에 비해 기록 경신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희성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사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마산 양덕중학교 사격팀 창단 멤버로서 승승장구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성병 선생님을 비롯해 김상수, 최성수 그리고 고등학교 때 김좌두 선생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사격을 제대로 배우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군부대에서 사격을 전문적으로 했던 코치를 여럿 만나기도 했다. 기량 발전과 함께 한층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는 1986년과 1988년 국가대표 상비군 1기로 뽑힌 바 있다. 제일은행에서 실업팀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국가대표 선수로는 단 한 차례도 경기 무대에 서지 못했다. 현역병 입대 때문이었다.

"제일은행 선수 당시 1차 선발전에 합격했지만 군대를 현역병으로 가게 됐다. 앞서 3년간 군대를 미뤄온 탓에 더는 늦출 수 없었다. 상무나 경찰청에 입대할 수 있었지만 후배들의 후임이 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아 현역으로 입대를 했다."

한희성 감독의 지도 아래 성장한 진종오. /연합뉴스

경남대를 거쳐간 선수 중, 그가 가장 아끼는 선수는 농아올림픽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수근(기업은행)이다. 지난해 최수근은 10m 공기소총, 50m 복사, 3자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농아올림픽 최초로 3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반대로 가장 아쉬운 선수는 유재철(경찰청)이다.

한 감독은 "재철이는 2회 연속 국가대표팀 선발 자리를 따냈음에도 쿼터가 없어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불운한 선수"라면서 "국제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순데 지도자로서 마음이 짠하다"고 밝혔다.

한 감독이 거론한 또 한 선수는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권준철(상무)이다. 권준철은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한다. 한 감독은 경남대 재학 시절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안타까워도, 직접 선수를 나무라지 않고 스스로 깨칠 때까지 기다리는 그다. 중·고등학교 전국 1·2위 수준이 아니면 넘보기 힘든 경남대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선수들인 만큼 믿고 기다리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다고 확신한다. 스스로 느껴야 또한 오래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른 지도자처럼 선수들을 세게 다그쳐 보다 일찍 성장하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깨쳐야 더 긴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진종오가 그런 제자다."

진종오는 경남대 3학년 때 2관왕을 차지했으나 4학년 들어 주춤했다. 진종오는 졸업 당시 한 감독에게 "경찰체육단에 가서 좀 더 가다듬어 권총에서는 1인자가 되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경남대 사격부원들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사격장 총성 속에서 살아간다. 한 감독은 따로 개입하지 않고 유심히 지켜보기만 한다. 지금 같은 겨울철에는 자세 교정과 체력 보강을 위한 훈련에 더욱 신경을 쓴다.

한 감독은 "사격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자제력"이라고 설명했다.

한 감독의 요즘 관심은 2018년 창원에서 열리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선수들 취업에 모아져 있다.

그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사격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런 무대다.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대회로 그 규모도 상당한 만큼 경남대 출신 많은 선수가 나설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취업 문제에서는 답답함이 앞선다. "전반적으로 실업 사격팀이 해체 또는 축소하는 분위기다. 올해 2명의 제자가 졸업하는데 전국체전에서 입상했음에도 사실상 갈 자리가 없다. 지도자로서, 사격 선배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감독은 명장, 지장이라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자신은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리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도 감출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사격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 이에 관한 한 그는 어떤 호칭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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