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45)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

연하장 같은 풍경을 선물하는 곳이다. 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세밑, 괜스레 들썩였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인파에 묻혀 있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했다. 한 해를 정리하고 뭔가를 결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부산했다. 이런 가운데 떠난 아산 외암민속마을(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은 어릴 적 언제 가도 푸근하고 평화로웠던 할머니 댁에서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을 휘감은 산 중턱의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세상을 뒤덮은 새하얀 눈까지 보태니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 설화산을 배산으로, 남서로 흘러내린 산줄기의 남서향에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커다란 마을을 이루었다.

외암마을은 설화산 반대편 맹사성 고택이 있는 중리 마을과 함께 약 5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애초에 강씨와 목씨 등 여러 성씨가 정착해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다 조선 명종 때, 장사랑(종9품 위호)을 지낸 예안 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고 그 후손 중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차츰 예안 이씨를 중심으로 동족 마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을 이름은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의 호를 따서 '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외암민속마을. 조선시대 어느 마을의 풍경인 듯하다. 눈이 내려 더욱 예스러운 모습이다.

마을은 초가집과 기와집이 조화를 이룬다. 예안 이씨 사대부가의 기와집과 양반집에 소작을 부쳐 살던 초가집이 어우러졌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설화산과 광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서로 만나 흐르는 큰 개울을 건너야 한다. 너른 돌로 만든 징검다리도 있고, 나무 잔가지를 단단히 동여맨 섶다리도 있지만 안전상 이유로 지금은 이용할 수 없다. 단단한 시멘트로 지어진 현대식 다리를 건너야 마을로 들어설 수 있다.

마치 세월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탄 듯 다리를 건너면 조선시대 그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드라마 <덕이> <야인시대>, 영화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등 사극이나 영화의 배경이 된 까닭이다.

다리를 건너면 물레방앗간과 마을 장승이 마을 길을 호위하듯, 이방인에게 경고라도 하듯 늠름하게 서 있다. 세상은 고요하다. 단단히 얼어 있는 세상을 깨우듯 새소리만이 마을을 가득 채운다. 초가지붕 위에도, 기와집 위에도 내렸던 눈이 모처럼 나온 햇살에 녹아내리며 빗소리보다 청아한 물소리를 보탠다.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이다.

추녀 끝에 달린 메주.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냇가를 따라 마을을 우회하는 길과 왼편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켜켜이 쌓아 올린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외암리는 일찍이 민속마을로 지정돼 비교적 잘 관리가 되어 있다. 기와집은 조선시대 상류 주택인 양반집의 위엄을 갖추고 있고, 초가 역시 소박하면서도 억척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참판댁, 병사댁, 참봉댁, 종손댁 등 가옥마다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택호를 지었다. 하나하나 읊조리며 정겨운 골목길을 걷는다.

돌담 너머의 추녀 아래 메주가 주렁주렁 달렸다. 너른 마당에는 장독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놓여 있다. 미처 창고에 들어가지 못한 철 지난 농기구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까치발로 자꾸 돌담장 안을 들여다본다.

어느 고택의 가마솥.

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600년 된 보호수 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여유롭고 평화롭다. 다가올 2015년도 그러하길. 느티나무에 기대 나지막이 소원도 빌어본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어린이 1000원.

마을 입구에 선 장승.

△인근 볼거리 = 아산시는 아산과 온양, 도고 3대 온천이 자리한 온천의 도시다. 온양온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가운데 한 곳이다. 뜨뜻한 온천에서 여행을 마무리해도 좋겠다.

외암마을에서 15분 남짓 거리에 자리한 지중해 마을(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은 산업단지가 들어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원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이뤄 뿌리 내린 곳이다. 마을 전체가 유럽풍으로 조성돼 그 자체만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