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사회와 정권의 우경화에 대해 깊은 우려 표명

정년퇴임이 채 1년이 남지 않은 한 법학교수의 소신 행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자격 박탈' 결정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며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이런 결정을 내린 박한철 소장 등 헌법재판관 8명을 탄핵하라고 청원한 최용기(65·법학과) 창원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공교롭게도 최 교수는 김기춘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인연이 깊다. 한국헌법학회장이던 2003년 그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던 김기춘 의원과 박관용 국회의장 요청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가능하다"는 법 자문을 했고, 이후 각종 토론회에서 탄핵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김기춘 의원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셈이다. 최 교수는 2003·2004년 탄핵 정국를 회상하며 "선거 개입 발언이 선거법 위반은 맞지만 탄핵감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자살까지 한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는 탄핵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이른바 '수구 꼴통 앞잡이'로 낙인 찍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다. 최 교수는 "1991년 남북 UN 동시 가입을 하면서 국제사회가 이미 북한을 한 국가로 인정됐고,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전히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다.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다만 실정법 위반을 했을 때 형사 처벌하면 된다. 남의 나라인 중국 공산당을 찬양해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말 한마디 한다고 처벌하는, 이건 뭐 60년 전이나 있을 법한 생각으로 우리 사회를 보고 이런 일(통합진보당 해산과 국회의원직 상실)을 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고 현 정권과 사회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을 우려스럽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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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기 창원대 법학과 교수.

이런 비판은 당연히 현 정부 최고 실세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도 향한다.

한 번은 도우미로, 이번에는 날 선 비판자로 인연을 이어가는 셈이다.

이런 최 교수 행동은 삶의 이력과도 관련 깊다. 그는 1979년 창원대 전신인 국립 마산대학 1기 공채 교수로 임명됐다가 임명 1년여 만인 1980년 7월 30일 해직됐다. 군 정보사찰기관이던 보안사는 부마·광주 민주항쟁 등에 연루됐다는 죄목으로 80년 7월 전국 124명의 교수를 잡아들였고, 이중 86명이 해직됐다. 최 교수도 그중 한 명으로 보안사에 끌려가 10여 일간 고문당했다고 했다. 학교명이 국립 창원대로 바뀐 84년 9월에야 복직돼 다시 강단에 섰다.

그는 "복직하고도 보안사 등 사찰기관이 계속 따라다녀 도망가다시피 86년 9월 독일 쾰른대학 객원교수로 가서 2년 반 있었다. 나는 내년 8월이면 정년 퇴임이다. 고금을 논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더는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난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가치중립적 삶, 중도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헌법적 가치와 국민 인권을 지켜야 할 헌재가 스스로 이걸 짓밟아 학자 양심으로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청원서를 낸 이유를 밝혔다.

헌재 결정을 두고는 "우리 헌법·법률상 법무부가 정당 해산을 청구할 수 있고, 헌재도 그것을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직 상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 헌법은 삼권 분립주의에 근거해 법원이 국회의원 자격을 심사·징계할 수 없고 국회에서만 다루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헌재가 이걸 판단한 자체가 삼권 분립주의 위반이자 헌법 위배 행위다. 여기에 정당 해산 선고를 하더라도 법적 근거 없이 국회의원 자격 상실 선고를 한 것도 법치주의에 위배된다. 유신헌법에는 정당 해산과 함께 소속 국회의원직 박탈을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 헌법에는 이런 규정 자체가 없다.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을 자유위임 원칙에 뒀고, 현행 공직선거법은 무소속 국회의원을 인정해 정당이 해산돼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어 두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해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는 점에서 비례와 지역구 의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공직선거법상 정당 해산이 돼도 둘 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광역 3명, 기초 3명) 의원직 박탈을 결정한 지난 22일 중앙선관위 전체위원 회의를 두고도 "이건 국회의원 비례대표와 마찬가지다. 위헌·위법한 결정으로 이들 선관위원도 헌재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탄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국회가 주도해서 이번 기회에 헌재와 중앙선관위를 가치 중립적인, 중용에 입각한 인물로 채우도록 바꿔야 한다. 독일·프랑스는 헌재 재판관 절반 이상이 교수다. 검찰·판사만 자리를 독점하면서 국민 권리를 이렇게 박탈하는 결정을 하면 헌재나 선관위는 존립 이유가 없다"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끝으로 최 교수는 "이번 결정은 헌법·법률 위반으로 원천 무효라서 국회의장이 집행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우리 소송 체계를 봐서는 결정 무효 소송을 제기해도 헌재 결정이 법원에서 뒤집히기는 어렵다. 결국, 정치적 해결만이 가능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 발언에 맞춰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면 이번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재판과 결정을 잘못한 헌재 재판관과 선관위 위원을 다 바꿔야 한다. 우리 국민은 독일 국민보다 더 우수한데, 아직도 통일을 못 하고 있다. 더구나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탓에 아직도 독일 공산당이 해산됐던 60년 전 낡은 사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그게 이번 헌재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런 낡은 사고에 사로잡힌 정책 결정자나 우리 지식인, 정말 문제다"며 민주주의 퇴행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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