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이 다 빚이라는 도 홍보물…학부모 100만 서명운동이 판 바꿀까

무상급식을 둘러싼 갈등이 좀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창원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추운 겨울 칼바람도 무릅쓰고 3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행진을 하며 홍준표 도지사와 경남도, 경남도의회를 비난했다.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와 경상남도 교원단체총연합회가 연 우리 아이 밥그릇 지키기 한마음 대행진은 무상급식에 대한 도민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날 경남운동본부는 여세를 몰아 무상급식 지키기 학부모 100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지난 4일 1만 명 선언을 발표한 이후 학부모의 호응이 큰 데 따른 것이지만, 무상급식 폐지에 따라 당장 내년 4월부터 금전적인 부담을 안아야 하는 학부모들을 전면에 내세워 홍 지사를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서명운동이 잘 진행돼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했다 한들 홍 지사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무상급식 논란은 이미 경남도를 떠나 여당과 정부가 풀어야 할 전국적인 사안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홍 지사가 처음 무상급식 폐지를 꺼낼 당시만 해도 보수 도지사와 진보 교육감의 기 싸움 정도로 읽혔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만에 무상급식 문제는 잘 짜인 각본처럼 홍 지사 프레임대로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과정을 되짚어 보면 홍 지사는 처음부터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마음이 없었다. 경남도가 지난달 말 전단을 만들어 18개 시·군청은 물론 읍·면·동주민센터와 시외버스터미널 등에 배포한 자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A4 용지 크기 4쪽 분량으로 만든 이 전단에는 '무상급식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남도는 애초 학교 90곳을 선정해 급식비가 목적에 맞게 쓰이는지, 계약 과정에 비리는 없는지 등을 직접 방문해 감사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아 경남도교육청이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었고, 결국 '감사 없이는 예산 없다'는 논리로 예산을 잘라버렸다. 그리곤 이 문제를 다시 선별-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만들어 '서민 자녀 교육지원 사업'이라는 급조한 사업으로 일선 시군 담당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22일 박종훈 교육감은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무상급식 재원 확보를 위해 자치단체를 설득하는 한편 학교급식법 개정을 위한 연대활동도 병행해 추진할 계획임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박 교육감은 또 지난달 학부모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학교급식이 가지는 교육적 의미를 생각하면 돈을 더 들여서라도 이뤄내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굳이 '무상급식도 교육의 일부분'이라 강조하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편견 없이 좋은 음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사실이다. 이는 몇백억 예산으로 따질 가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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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밥그릇이 정치의 흥정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다. 광역단체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지역별로 유상-무상으로 갈리고, 교육감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무상급식 예산이 사라지거나 편성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이들의 급식문제는 누구의 의도에서가 아니라 백년대계 차원에서 검토되고 결정돼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무상급식 갈등도 학교급식과 관련있는 도청, 도교육청, 학교운영위, 학부모, 생산자 등이 머리를 맞대 슬기롭게 풀었으면 한다. 갈등의 추태를 우리 미래인 아이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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