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희 교수 '국가 안보와 표현의 자유'…'국가=대통령'절대존재 군림

박근혜 정부 들어 부쩍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는 현 시기 표현의 자유 위기를 고찰하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주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기조발제문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언제 어디서 사제폭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발굴·폭로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수사) 사건은 예상대로 우리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몰고 왔다. 단지 '반공'이라는 종래 금기만 더욱 강화된 것이 아니다. 한상희 교수는 '새로운 통치술'이 가미된 것이 이번 사건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기존 금기에 종북·좌파라는 관념을 부가함으로써 반체제, 나아가 진보까지도 새로운 금기의 영역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연한 의심이나 학자로서 추론이 아니다. 국정원이 주도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안보 강연자료인 <반대세의 비밀, 그 일그러진 초상>은 "진보세력이란 용어는 좌익세력이 자신들의 반대한민국 활동, 사회주의 활동을 합리화하고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에 동참토록 유도하며, 나아가 자신들의 실체를 은폐·엄폐하기 위한 전략적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의당 관계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와 개인 사생활 보장을 촉구하는 전단 살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이라는 절대선

이 책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은 절대선이고 부정은 절대악이며 '국가'는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애국을 말하되 실체 없는 국가를 숭배의 대상으로 설정"했을 때 그 결과는 자명하다. "국가의 의사를 대의할 수 있는 자, 즉 대통령 등의 권력자가 국민 위에 한없이 군림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논란이 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한 것은 <반대세의 비밀>이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상희 교수는 "국가=대통령이라는 의제를 통해 절대존재로서 국가를 국가기관으로서 대통령으로 그대로 이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횡행했던 국가원수모독죄의 구조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압박과 위협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한 교수가 보기에 그것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과거 군사정권과 마찬가지로 언론기관 자체를 권력 의지 아래 복속시킴으로써 권·언 유착을 도모하는 것이다. 언론기관 인사권 개입, 대기업의 미디어 소유 규제 철폐 등이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다. 대기업의 미디어 진출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목소리나 공공적 가치가 아닌 자본과 시장의 논리, 경제논리에 의해 여론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집회·시위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다. 집회 주최자 구속·수배, 소화기·방패·물대포 등을 동원한 폭력 진압, 집회·시위 현장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집시법 개악 시도 등이 횡행하는 현실이다. 한 교수는 이 정권이 "3·1운동부터 촛불집회까지 면면히 이어온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사이버 명예훼손죄·모욕죄의 무차별 적용, 게시물 삭제 명령, 통신실명제 도입, 감청권 확대 등에서 확인되는 사이버 공간 침탈이다. 일부 언론, 일부 사회단체만 상대하면 되는 앞서 두 경우와 달리, 온라인 여론은 다수의 불특정 대중이 이끌어가고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현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일지 모른다. 심지어 사이버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 질서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까지 갖고 있는 '그들'이다. "사이버 모욕이나 폭력은 오프라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MP3 파일의 공유는 신자유주의적 재산권 개념을 흔들어놓는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익명성으로 상징되는 사이버 공간의 해방성은 각종 하위문화, 대항문화를 형성해 새로운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인터넷상의 의사소통에 주목하는 것이며 물리력 사용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인권과 노동 가치 무력화

요약하면 이렇다. 한상희 교수는 최근 정부가 "87년체제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그 발현태로서 10년에 걸쳤던 정권교체의 경험들로부터 다시금 권력을 전유해 나가면서 촛불시위나 시민단체의 활동 등으로 활성화되어 온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량들을 무력화시키고, 이와 함께 사이버공간을 통해 새로이 자유화되는(혹은 해방되는) 공공영역을 정치권력의 식민지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전방위적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박근혜 정부가 '꿈꾸는 나라'는 자본이 효율·생산성 같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앞세우며 마음껏 활개치는 그런 세상이기도 하다. 인류가 수많은 피와 땀으로 이룩해 온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의 가치는 이제 자본, 관료, 전문가가 중심이 된 '편협한 조합주의'에 굴종을 강요받는 하찮은 무엇일 뿐이다.

대안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야당 등 정치권이라도 제 역할을 하면 모르겠지만 '이석기 사태'와 연이은 선거 패배 이후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다. 한상희 교수는 "현재의 인권 상태, 현재의 국면은 여전히 운동과 저항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과거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과조차도 새로운 권위주의에 흘려버려야 했던 남미 제국의 전철을 되밟아나가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외치며 국가적 폭력에 단호히 대처하는 시민의 권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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