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재개발로 원주민 더 열악한 곳으로 쫓겨, 무분별 개발·주민참여 배제 등 지역주민 간 불신·갈등도 심각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구도심 재개발 사업이 오히려 주민 간 갈등을 키우고 원주민인 도시빈민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한때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개발 붐이 일면서 "재개발만 하면 그냥 앉아서 돈을 번다"는 말이 통했다. 그런데 지금 창원에서는, 그중에서도 옛 마산과 진해지역에서는 무분별한 재개발이 오히려 서민에게 빚을 떠안게 하고 조합의 전문성 부족과 투명성 결여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키우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재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난 16일 진해 여좌구역 주택재개발과 관련해 비상대책위 주민들이 정비사업조합설립 추진위원회 해산 등을 요구하며 창원시청 앞 인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날 비상대책위 30여 명은 △재개발 사업성 △터무니없는 공시지가 △토지와 주택을 소유한 이들이 대부분 70대 이상 노령층인 점을 내세우며 "여좌지구는 주택 대부분이 한 차례씩 증·개축해 노후주택이라 할 수도 없고 재개발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마산·진해지역에서 재개발이 추진되는 구역마다 똑같은 이유로 마찰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주민 참여 배제 =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정비사업 시행과 관련해 주민 참여를 규정하지만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 상당수는 비용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고 동의해줬다가 나중에 높은 부담금에 뒤늦게 속았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마산회원구 회원동 한 주민은 "재개발하면 돈 번다고만 했지 주민부담금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주전자, 냄비 등 선물공세를 하면서 재개발 동의서를 내미는데 특히 나이 많으신 노인들은 속을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불만을 터트렸다.

조합 측은 주민 입장에서 투명성 있게 정비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수익성 중심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모든 잘못이 조합에 있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은 '잘 되겠지', '바쁘다'라는 핑계로 총회 등에 잘 참석하지 않아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사업이 진행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다 보면 사업주체인 시행자의 일방적인 의지에 따라 진행되면서 찬반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쫓겨나는 도시빈민 =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상대적으로 매매가나 전세, 월세가 싼 주거지이다 보니 재개발이 진행되는 경우 도시빈민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원주민들이 대부분인 저소득층은 분양가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분양권을 전매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특히 노인 등 취약계층은 더욱 열악한 지역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싼 주거지를 찾지 못해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회원동 한 주민은 "싼 가격에 세들어 사는 주민 입장에서는 재개발로 인한 땅값 상승과 분양가 등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원주민을 위한 재개발이 되레 원주민을 도심 밖으로 몰아내는 재개발이 되고 있다"고 가슴을 쳤다.

◇파괴되는 공동체 = 회원 2구역은 창원지역 재개발 지역 가운데 주거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이다. 10평 미만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재개발 필요성도 높지만 그런 만큼 빈민도 많아 주민 사이에 재개발 갈등도 많다.

찬반 양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에서도 갈등은 잘 나타난다. 조합 측은 '빠른 재개발 속에 불어나는 우리재산'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반대 추진위는 '내집팔아 산꼭대기 집도 못산다'는 플래카드를 동네 곳곳에 걸었다.

한 주민은 "저 여편네는 재개발 찬성한다아이가. 절대 이야기하지 마라"면서 내 편 네 편을 나눈다.

사람들도 점점 지쳐간다. 노익 합성 2동 재개발반대 비상대책위원장은 "골이 아프고 힘이 많이 든다. 살면서 파란불, 빨간불 교통법규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재개발 때문에 소송 2건, 행정심판 3건, 고발 1건 등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며 "변호사 선임 등 지금까지 든 비용만 5000만 원이다. 이젠 돈 나올 구멍도 없다. 항소해야 되는데…"라고 고개를 떨궜다.

한 조합장은 "재개발하려는 사람 있으면 뜯어말리고 싶다.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끼리 등 돌리고 말도 안 하고…. 가슴만 멍든다"면서 한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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