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 실제 노부부 이야기 담아 다큐 영화 '이례적 흥행'

개봉 20일 동안 135만 관객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역주행 정상을 지키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

입소문이 강력한 티켓 파워가 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대중가요 속에서도 그러하지만 사랑이야기만큼 영화 속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가 있을까.

희극과 비극은 물론이요, 금지된 사랑에서 극단의 장치들을 장착한 역동적인 러브스토리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에 손수건을 챙겨 극장으로 향하는 걸까. 더구나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말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70년이 넘는 세월을 변함없이 서로 아끼고 소중히 여겼던 부부의 사랑 이야기라 했다. 하지만 영화는 첫 장면이 그러하듯이, 제목이 말해주듯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76년 차 노부부의 한결같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할머니가 무덤 곁에서 하염없이 흐느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얀 눈에 덮인 산 아래 무덤에서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픈 데 '호' 해주기, 쓸던 낙엽을 던지며 장난치기, 제철 꽃을 꺾어 서로에게 선물하기, 캄캄한 밤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서운 연인을 위해 문 밖에서 노래 불러주기, 커플 한복 입고 장보러 가기. 결혼 76년 차,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가 펼쳐보이는 일상이다.

굳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미리 알지 않았더라도 하루하루를 상대를 위해 배려하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아껴주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 한쪽이 애틋해진다.

장난으로 받은 물세례라도 꼭 돌려주고야 마는 할머니와 애써 쓸어모았던 낙엽을 기어이 흩트려 상대방의 머리에 쏟아붓고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할아버지는 유치하리만큼 개구지다. 그 모습에 관객이 맘껏 웃을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살아서 함께하는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내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밤새 밭은기침을 해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문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더는 할머니에게 장난을 걸지 않고, 할머니가 해준 밥을 맛나게 먹지 못하는 할아버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새벽녘에 잠든 할머니를 어루만지며 애틋함을 감추지 않는다.

76년 차 노부부의 한결같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한 장면.

그런 할아버지 곁에서 할머니는 '강을 건널 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열두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전쟁 통에, 혹은 질병으로 3살, 6살 나이의 여섯 아이를 잃은 부부.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6명의 자식을 위해 노부부는 시장에 가서 내복을 산다.

아동용 내복을 사온 할머니는 "먼저 간 사람이 아이들에게 내복을 예쁘게 입혀주자"며 목이 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한 그 세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그 험한 세월 속에서도 변치 않았던 이들의 사랑이 실로 위대해지는 순간이다.

"3개월만 딱 더 살다 가면 내가 얼마나 반갑겠소."

할머니는 병환이 깊어지는 할아버지 곁에서 아직도 못다 준 사랑에 마른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내 홀로 남은 할머니가 가여워진다.

그런데 할머니는 "할아버지 생각해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불쌍해서 어쩌나"라며 차마 할아버지 무덤 곁을 떠나지 못한다.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그 세월을 함께 견뎌온 부부, 끝내 그들을 갈라 놓은 죽음, 그리고 그 죽음마저 갈라 놓지 못한 소소했으나 위대했던 사랑은 긴 여운을 남긴다.

유독 울고 싶었던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난데없는 사건과 사고들로 뜻하지 않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라. 그리고 내 옆의 누군가에게 아직은 뭔가 해줄 수 있음에 감사하라.

그리고 이 노부부에 기대어 어린애처럼 한바탕 울어도 좋으리라.

추억은 힘이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추억은 쉬 잊히지도 않는다.

첫눈을 함께 먹어줄 할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할아버지와 알콩달콩 보냈던 그곳에서 할머니의 이 겨울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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