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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마다 어울리는 술 따로 있다

[까칠한 맛읽기]술과 음식의 조화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2014년 12월 17일 수요일

한때 '열풍' 수준이었던 막걸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2010~2011년경 절정을 찍은 뒤 매년 10~20%씩 꾸준히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음식 전문가, 애호가들이 예견했던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인기 하락 요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막걸리' 그 자체였다. 아스파탐 등 각종 화학첨가물 범벅인 일반 막걸리는 그 맛이 너무 달고 자극적이어서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시라.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먹는 술안주는 삼겹살 등 구운 고기와 생선회, 그리고 치킨이다. 이들 음식을 막걸리와 함께, 진짜 짝이 잘 맞는다고 여겨서 먹어본 기억이 있는가? 아마 드물 것이다. 아무리 음식에 관심이 없어도 본능적인 미각은 어찌할 수 없다. 아니다 싶으면 당장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술과 음식의 '최적 조합'은 서로의 맛을 잘 살려주면서도 각자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게 기본이다. 막걸리는 그 '강렬한'(?) 존재감으로 말미암아 웬만한 음식의 존재감은 단박에 압살해 버린다. 생고기에 소금·후추 정도만 더해 굽거나 튀긴 고기, 그리고 간장에 살짝 찍어 은은한 감칠맛과 바다 내음을 즐기는 생선회는 막걸리의 강한 단맛, 신맛을 제대로 버텨낼 수 없는 것이다.

막걸리에는 역시 양념, 특히 고추 양념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제격이다. 고추장·고춧가루 등을 듬뿍 퍼부은 각종 찜, 조림, 무침, 볶음, 탕 종류들 말이다. 막걸리 하면 아구찜이나 홍어삼합, 회무침, 두부김치, 김치찌개 등이 떠오르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막걸리의 몰락은 필연

음식에는 다 그에 걸맞은 술이 있다. '치맥'(치킨+맥주)이란 말이 괜히 탄생한 게 아니다. 개운하면서도 쌉싸래한 맥주는 치킨의 느끼하고 고소한 맛을 잡아주는 데 효과적이다. 그야말로 서로 '함께 사는' 것이다.

맥주는 막걸리처럼 매운 양념의 음식에도 비교적 잘 어울리는 편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밍밍하면서도 개성 없는 '국산 맥주'에 한해서다. 묵직하면서도 향과 맛이 강한 맥주, 특히 밀맥주 등 에일맥주와 매운 양념은 맛의 충돌을 일으킨다.

레드 와인도 마찬가지다. 레드 와인 중에서도 포도의 타닌 성분이 많은 것은 떫고 신맛이 강해 매운 양념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금속성의 불쾌한 여운을 입안에 남긴다. 레드 와인은 역시 구운 고기(스테이크)와 단짝이다. 상큼한 신맛이 느끼하고 묵직한 지방의 맛을 견제하면서도 살려준다. 고기도 더 먹고 싶어지고 와인에도 자꾸 손이 가게 된다. 구운 고기만이 아니다. 수육·족발·튀김·소시지 같은 것도 레드 와인과 궁합이 괜찮다. 레드 와인은 맛과 향이 만만치 않은 오래 숙성한 치즈와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물론 와인도 맥주처럼 천차만별이다. 두툼함의 정도부터 신맛과 떫은맛의 강도 모두 제각각이다. 음식과 와인 모두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면 그 강도를 잘 살펴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양념이 다소 들어간 음식에는 두툼함이 살아 있는 와인을 택하는 식으로 말이다.

레드 와인과 치즈의 조화는 치킨과 맥주, 사시미와 사케의 그것 못지않게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와인에 어울리는 치즈를 고르는 모습. /연합뉴스

해산물 요리는 어떨까. 일단 생선회나 생굴 등 날 것 그대로 먹는 것부터 따져보면 이건 생선회(사시미)를 거의 일상적으로 먹는 일본의 경우를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일본의 대표적인 술인 쌀로 빚은 '사케' 이야기다. 사시미 또는 스시(초밥)와 사케의 조합은 치킨과 맥주, 치즈와 레드 와인의 그것만큼 절정이라 할 만하다. 사케의 슴슴하면서도 여운 있는 단맛은 사시미의 역시 수줍지만 여운 있는 감칠맛을 극대화해준다. 혼자일 때는 둘 모두 약한 존재이지만 함께함으로써 둘은 최강이 된다.

한국에도 만드는 방법은 다르지만 사케와 유사한 청주가 있는데 대중적인 술이라 보긴 어려우므로 '어쩔 수 없이' 소주를 대입해야 할 것 같다. 서양에서는 신맛과 떫은맛이 중심인 것은 레드 와인과 같지만 그 강도가 약한 화이트 화인이 해산물 요리를 주로 상대한다. 익혀 만든 요리뿐 아니라 생선회·생굴 등과도 물론 찰떡궁합이다. 해산물을 생으로는 잘 먹지 않는 서양인들이 생굴과 화이트 와인을 함께 즐기는 모습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케부터 청주, 소주, 화이트 와인까지. 공교롭게도 비슷한 특성을 지닌 술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음식의 조리법부터 먹는 법, 궁합 모든 것은 수천,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다양한 시행착오와 실험 끝에 자리를 잡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맥이 우리를 구원할까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이상의 글에서 우리가 흔히 먹는 술 가운데 언급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어도 '만능'처럼 등장하는 무적의 '소맥'(소주+맥주)이 그것이다.

섞는 비율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맥주가 기본인 술이므로 맥주에 준해서 음식도 생각하면 될 듯한데, 기자 역시 종종 소맥을 먹긴 하나 수준 이하의 술을 시장에 내놓고 그것을 보완하기는커녕 소맥 소비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주류 제조회사들의 행태가 괘씸해 언급하지 않았다.

소맥은 밍밍하고 맛없는 국산 맥주가 조장한 억지스러운 술 문화다. 그 자체로 맛있는 맥주, 맛과 향이 꽉 찬 맥주는, 누구도 소주를 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맥주의 맛이 부족하니, 소비자 스스로 소주를 타 그 맛을 보완하고 '좋다고' 들이켜고 있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양질의 해외 맥주까지 직접 수입해 맥주회사들이 팔아대고 있으니 맥주를 끊지 않는 한 이건 뭐 도저히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해외 맥주 판매가 급증하자 나름 질 좋은 맥주를 내놓고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소맥'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과 팍팍한 주머니 사정은 그조차도 외면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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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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