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 밖 생태·역사교실] (28) 합천

11월 29일 '토요동구밖교실' 역사탐방은 마산 새샘·산호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합천으로 떠났다. 그동안 역사 탐방은 대부분 문화재나 박물관처럼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물건들이 많은 데서 치러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물이나 성곽이 아닌 '인물'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는 합천 삼가면 토동마을을 찾아 조식 선생이 어떤 분인지를 한 번 알아봤다.

버스에 올라 함께 떠나는 친구들 얼굴을 살펴보니 어∼휴 싶다. 남명 조식은커녕 역사탐방보다는 그냥 씩씩하게 뛰어놀면 딱 좋을 올망졸망한 초등학교 낮은 학년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친구들은 그냥 신나고 재미있는 나들이를 간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어른이라고 역사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이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 가운데는 아이들과 역사탐방을 하면서 자기도 많이 배운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날도 남명 조식이 누구인지 몰라 아침에 급하게 검색을 해 봤다는 어른도 있었다.

◇남명 조식 선생 생가 있는 토동마을로 = 남명 조식(1501~72)은 율곡 이이(1537~84), 퇴계 이황(1501~71)과 더불어 조선 3대 유학자로 꼽힌다. 셋이 얘기한 사상의 근본은 다르지 않지만 제각각 색깔은 있다. 한 세대 아래인 율곡은 이론과 실천을 고루 중요하게 여겼다. 동년배인 퇴계 이황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이론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므로 이론이 중요하다 주장했다. 반면 남명 조식은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이론은 힘이 없다면서 무엇보다 실천을 강조했다.

세 사람이 세상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저울에 달 수는 없지만 그 가운데서도 남명이 주장한 실천사상은 나라가 어려움에 빠질 때 더욱 빛을 내었다.

남명 선생의 영향을 받은 사람 가운데 가장 앞세워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망우당 곽재우다.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는 남명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그 아내가 남명 외손녀이기도 했다. 2013년 지역 역사 전문가 300명한테 경남 대표 역사 인물을 물었더니 1등이 남명 조식이고 2등이 곽재우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홍의장군으로 알려져 있는 곽재우보다 남명 조식이 낯선 인물일 수밖에 없다.

합천 삼가면 토동마을에서 용암서원 앞 남명 선생 흉상과 그 일대기를 살펴보는 마산 새샘·산호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선생님. /김훤주 기자

열다섯 살 때 곽재우는 조식 선생 제자가 된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옛말이 있다. 어느 날 조식 선생이 소태국을 끓여 사람들에게 돌렸는데 모두들 먹지 못하고 뱉었지만 곽재우만은 묵묵히 마셨다. 까닭을 묻자 "비록 입에 쓰나 목구멍으로 삼키면 몸에 좋은데 뱉을 이유가 있겠사옵니까?" 열다섯 살 소년의 답이 이랬고 이로써 남명은 곽재우를 외손서로 낙점했다,

곽재우 어릴 적 일화를 풀어놓은 데는 나름 까닭이 있었다. 열다섯이면 요즘 중학교 2~3학년이다. 그 시절과 굳이 견주지 않더라도 요즘 아이들은 참 굳세지 못하고 여리다. 어렵고 힘든 인을 견디는 그 나이에 걸맞은 면역성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움직이기 싫어하고 추위도 더위도 못 견디고 음식도 혀 끝에 달달한 그런 것만 찾는다. 오직 편하고 좋은 것만 누리려 하고 또 거기에 길들여지고 있다. 쓴 것이 몸에 좋다는 이치까지는 깨치지 못해도 그저 씩씩하게 잘 움직여만 줘도 고마운 일이다.

외토리=토동마을은 조용한 시골이다. 조식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생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뇌룡정을 다듬어놓았지만 다른 유적처럼 사람 발길이 잦지는 않다. 평생 벼슬을 마다한 채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며 강직하게 살았던 조식 선생의 삶과 성품이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 닮아 있다.

아이들 방문 덕분에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뇌룡정이 무슨 뜻인지, 단성소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가 어린 친구들에게는 어려운 노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성소를 새긴 빗돌과 뇌룡정 앞 안내판을 꼼꼼히 살피며 할 수 있는 만큼 답을 찾는 아이들 모습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뇌룡정과 용암서원을 둘러보고 선생 생가로 옮겨갔다. 생가터는 토끼 모양을 한 토동마을의 심장에 해당된다고 한다. 좋은 기운 덕분에 훌륭한 인물이 났다고들 하는데 정작 선생의 외할아버지는 그 좋은 기운을 친손자가 아닌 외손자가 가져가 서운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선생의 생가 마루에 걸터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뇌룡정이 무엇이고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이들과 얘기를 나눴다.

남명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뇌룡정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고 있다.

점심은 한우로 유명한 삼가장터 해인식육식당에서 소불고기 정식을 먹었다. 그동안 역사 탐방 점심 가운데 반응이 단연 으뜸이었다. 달짝지근하고 자작하게 볶은 불고기가 아이들 입맛에 짝짝 달라붙었던 모양이다. 하루 느낌을 쓴 글들에서 점심이 맛있었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나온 적은 처음이다. '너무' 맛있어서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 친구도 있고, 불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너무 너무' 행복했다는 친구도 있다. 글에 '너무'라는 표현이 넘쳐난다. 이런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좋은 사람 만나고 맛있는 음식 먹는 이런 일상의 즐거움이 가장 큰 행복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꿈꾸는 것은 '너무' 거창한 행복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3·1 만세운동에도 깃든 남명 사상, 그림에 담아보고 = 점심을 먹고는 삼가장터에 있는 3·1만세운동기념탑이다. 이 3·1만세운동과 조식 선생을 따로 떼어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남명이 제자를 가르쳤던 장소 이름인 뇌룡정에서 뇌룡은, 침묵할 때는 마땅히 침묵하지만 나서야 할 때 또한 마땅히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실천을 중시한 그의 사상이 바로 뇌룡에 함축돼 있다. 선생의 사상과 정신으로부터 대를 이어 영향을 받은 이곳 사람들은 1919년 3·1만세 운동 때 떨쳐 일어섰고 무려 3만이나 됐다. 전국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고 꼽히는 만세운동이 이 작은 장터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의 정신이 300년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면면히 흐르고 있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기념탑 앞 벤치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념탑을 그렸다. 제각각 눈에 담기는 대로 그리면 되는 것이다. 그냥 눈으로 스윽 한 번 보면 잘 새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손수 그려보는 것만큼 아이들 기억에 잘 새겨지게 하는 방법은 없다. 아무래도 아이들 눈에는 한가운데 태극기가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모양이다. 태극기를 가운데 그려놓고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 심사는 여러 선생님들이 맡았다. 자기 그림 위에 표가 던져지는지 어떤지 조마조마 지켜보는 아이들의 긴장 어린 눈망울이 재미있다. 한 표가 놓일 때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표를 받지 못해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열심히 그렸으니 박수를 보냈다.

삼가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 앞 벤치에서 아이들이 기념탑을 그려보고 있다.

오늘 역사탐방 하기 전에 남명 조식이 누구인지 알았던 친구는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아무도 없다. 오늘 공부한 것 모두 잊어도 좋다고 했다. 뇌룡정이 무슨 뜻인지 단성소가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단 하나 남명 조식 선생 이름만 새겨도 오늘 역사 탐방은 대성공이다, 학년이 높아져 남명 조식을 배우게 되면 아이들은 아마도 그 이름이 반가울 것이고, 그래서 더 많이 열심히 남명 선생에 대해 공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보탰다. 역사탐방은 공부 그 자체라기보다는 공부에 필요한 동기 부여가 될 그런 기회를 작으나마 만들어주는 데 목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제법 진지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번이 마지막 역사탐방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쓰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꾀를 부렸지만 역사탐방을 하고 가면 뿌듯했다고 쓴 친구도 있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다시 하지 못한다니 서운하다는 친구도 있다. 그동안 다닌 역사탐방에서 기억에 남는 곳을 차분하게 적은 친구도 있다. 다들 마지막이라 하니 서운하다는 글이 대체로 많다. 시작은 낯설고 끝은 언제나 이쉬움을 남기는 법. 그런 경험들과 느낌이 쌓이면서 아이들은 조금씩조금씩 자랄 터이고….

토동마을 한가운데 남명 선생 생가에서.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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