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석 씨 아버지 차 몰다 사고 낸 수경 씨…예비 시부모 오히려 따뜻이 감싸줘 감동

'운전 가르치고 배울 때 부부 혹은 연인 간에는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가르치는 한쪽이 평소 없던 성질을 냄으로써 둘 관계가 악화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둘을 더 돈독하게 한 계기였다.

김해시 장유동에 사는 이병석(42)·남수경(41) 부부는 7년간 연애한 후 지난 1999년 10월에 결혼했다.

둘은 20대 초반 친구 소개로 만났다. 키 차이가 꽤 났다. 남자는 186cm, 여자는 157cm였다. 각자 아담한 여자, 키 큰 남자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서로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레 연애까지 이어졌다. 여자는 데이트 때면 이전에 신어보지 못했던 굽 높은 구두를 신으며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 그래도 '고목 나무 매미 같다'라는 얘기는 종종 들어야 했다.

20대 초반 연인이 피할 수 없는 운명, 입대가 다가왔다. 입소일 며칠을 앞두고 둘은 지인과 함께 자리를 함께했다. 신파 한편을 찍듯 서러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남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진한 키스도 나누었다. 그렇게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남자 전화를 받았다. "훈련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해서 다시 집에 왔다"는 얘기였다.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긴 했지만, 며칠 전 흘린 눈물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아 머쓱할 수밖에 없었다.

둘 관계가 더 단단해진 그날의 '운전' 이야기는 이렇다.

둘은 고성 당항포로 바람을 쐬러 갔다. 남자는 새로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버지 차를 끌고 갔다. 마침 여자는 운전면허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 없고 너른 공간이 있어, 남자는 여자에게 "연습 삼아 운전 한번 해볼래"라고 했다.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제법 잘 나간다 싶었지만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가속페달에 발을 얹은 것이다. 바퀴가 도랑에 빠지면서 자동차는 반 정도 뒤집혔다.

차에서 빠져나온 여자는 몸이 쑤신 건 둘째치고, 이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말끔했던 새 차는 많이 상해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말 하지 마라. 몸은 괜찮으냐"며 몸을 살피고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20대 초반인 남자도 사실 경황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전화했다. 아버지는 택시를 타고 1시간 넘는 거리를 곧장 달려왔다. 그렇게 대충 현장을 정리한 후 다 함께 남자 집으로 갔다.

여자는 이전부터 남자 집에 왕래하던 터였다. 어른들이 딸처럼 대해주셨지만, 이날만큼은 스스로 마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자 아버지·어머니는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크게 다친 데 없어 다행이다"는 말만 되뇌었다. 새 차가 망가진 것에 대해서도 일절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 시간까지 저녁도 못 먹어서 배고프겠다"며 따듯한 밥까지 차려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이날 남자와 어른들 모습에서 그 답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둘에게 큰 위기가 찾아온 적도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면서 딱 한 번 선을 봤다. 애초 집에서 언니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신 떠밀려 나간 것이다. 그런데 남자 지인이 이 광경을 목격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여자는 선 보는 도중에 '8282'라는 삐삐 호출을 계속 받았다. 전화하니 남자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며 화를 불같이 냈다. 여자는 선 자리를 정리하고 남자를 만나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하지만 냉랭해진 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연락 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여자는 남자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밥도 거의 안 먹고…. 속이 말이 아닌 모양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바꿔준 전화로 둘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남자 어머니가 위기였던 둘을 구해준 셈이다.

지금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 후 첫 아이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계신 친정엄마가 돌아가셔도 그렇게 울진 않았을 겁니다. 키도 크고, 허풍스럽지 않은 남자가 처음부터 좋았죠. 나중에는 시어른들께 마음을 더 빼앗겼습니다. 운전하다 사고 났을 때, 또 우리 관계가 위기였을 때, 따듯하게 품어준 분들이 아버님·어머님이니까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