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세계 넘어 몸·정신 수양 "힘든 시기 검도로 이겨냈죠"

안경을 낀 하얀 얼굴. 자그마하지만 다부진 체구. 소매 아래 드러난 하얀 팔 위에 옅은 멍자국 몇 개 보인다. 박우희(34·김해시 생림면) 씨는 얼마 전까지 검도 사범이었다. 현재는 다름 아닌 대학생이지만.

"검도에 대한 환상은 고등학생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만화책 같은데 나오는 검도 이미지가 무척 멋지잖아요. 나도 한 번쯤 배워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스무 살을 갓 넘긴 박 씨가 대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관심이 있어 검도동아리에도 들긴 했지만 제대로 배워보진 못했을 때였다. 박 씨는 학교가 있는 부산에서 집이 있는 김해까지 통학을 했는데 그 환승 지점에 검도관 하나가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운명인가 했어요. 들어가서 여기 다니고 싶다 했더니 관장님도 얼떨떨해하시더라고요. 그도 그럴게 도장을 연 지 얼마 안 돼 관원이 3명인가 있던 때였거든요."

그때부터 학교생활보다 검도가 우선이 됐다. 수업은 오전에 몰아서 듣고 오후엔 도장을 갔다. 그렇게 검도의 매력에 점점 빠져갔다.

"힘들긴 했어요. 여자 관원이 드문 편인데 그게 왜 그러냐면,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 환상을 가지고 온단 말이에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면 엄청 힘들어요. 손에 물집이 생기고 다치는 건 다반사죠. 게다가 같은 동작만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여차저차 그 단계를 넘어서면 장비를 착용하거든요. 근데 또 장비가 무겁고 답답하니까 더 힘들어요. 장비가 무거우면 8kg이 되니까요. 게다가 한여름이면 더하고요. 이즈음 그만두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하지만 여기를 지나면 정말 중독성이 있어요. 쉬면 생각이 날 정도로요. 검도는 둘이서 하는 운동이잖아요. 말하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과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운동이죠. 게다가 무척 집중해야 하는 운동이잖아요.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것만이 아닌, 다른 차원의 집중을 경험할 수 있어요. 표현하기 힘들지만 검도의 매력은 정말 무궁무진해요."

박 씨가 28살 되던 무렵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일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후에 도장에 나가는 건 잊지 않았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 검도를 하는 건 사치라고 느끼긴 했지만 당시 그를 지탱해주는 건 검도였기에 몸이 힘들다고 해서, 바쁘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생활. 박 씨는 올해 초 사범 자격증을 땄다.

"사범이 되는 데 10년 정도 걸려요. 저는 조금 오래 걸린 편이죠. 정말 불가피하게 조금 쉬어야 했던 때도 있었거든요."

13년 전 검도를 시작한 박우희 씨. 그는 올해 초 사범 자격증을 땄다. /우보라 기자

박 씨는 사범이 되자마자 도장을 잇겠냐는 제의도 받았다. "정말 기쁜 제의였는데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이전부터 아이들을 가르쳐왔지만 그즈음 고민이 깊었거든요. 내가 정말 잘 가르치는 건가, 나는 배운 대로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배운 게 정말 맞긴 한 건가, 의구심이 계속 들었어요. 게다가 전 선수 출신도 아니죠. 좋아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사람이거든요. 그때 남자친구가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스스로 이렇게 확신이 없는데 제의를 받아들이면 힘들기만 할 거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할 때 부담을 얘기해줬어요. 그러면서 휴학하면서 자연스레 그만뒀던 대학 생활을 다시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오히려 조금 떨어져 보면 검도를 다시 더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요."

인제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박 씨는 이렇게 검도와 학업을 병행하게 됐다.

"학과에 띠동갑인 친구들도 있어요. 학기 초 강의실에 딱 들어갔는데 다들 교수님인 줄 알고 쳐다보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자리에 앉는데 조금 민망하긴 했어요."

박 씨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검도를 하다 만난 남자친구는 영양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범 생활을 했을 정도로 검도를 좋아한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다른 도장에 다니고 있었어요. 오며 가며 얼굴은 알던 사이였는데 우연히 같은 대회에 나간 걸 계기로 친해졌죠. 좋아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어 더 즐거워졌어요."

마주 앉은 박 씨가 수줍게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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