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자원으로 본 밀양의 전쟁] (1) 산업화와 전력망

밀양 사태는 사회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밀어붙인 '신고리~북경남 765㎸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맞서 밀양 주민들은 10년을 싸우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이 과정은 한국 사회와 정치를 해석하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다.

연구협동조합 '데모스' 장훈교(성공회대 사회학 박사·사진) 운영위원장이 최근 <밀양의 전쟁 : 공통자원 기반 급진 민주주의 시각으로 보는 밀양>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학자와 연구가들이 모여 창립한 데모스는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시대의 야만과 조직화된 폭력구조를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이 보고서에서 밀양 사태가 생긴 한국사회 역사·정치적 배경, 밀양 주민들에게 '땅'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할매가 투쟁의 주체가 된 사회적 분석, 국책사업을 밀어붙이면서 벌어진 국가폭력, 그에 맞선 연대, 밀양 이후와 대안까지 총망라해 분석했다.

장 위원장의 동의를 얻어 묻고, 답하는 대화형식으로 이 보고서를 여섯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밀양 사태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올해 2월 박사학위 논문을 끝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실존적 고민을 했었다. 밀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나의 일상과 한국사회 폭력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런 것을 고발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는 반성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이번 보고서는 내년 책 출간을 위한 요약본이다."

-'밀양 이전에 밀양들'이 존재했다는 뜻이 무엇인가?

"밀양 사건을 발생시킨 것은 국가 전력망 구조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산업화를 본격 추진한 1960년대부터 이미 밀양과 동일한 사건을 반복 경험해 왔다. 이 갈등 구조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한 현재까지도 유지·존속되고 있다."

지난 9월 23일 밀양시청 앞에서 주민들이 "공권력과 돈으로 세운 철탑, 우리는 한 기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철탑을 뽑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하는 모습. /경남도민일보DB

-그렇다면, 군부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국가주도 산업화와 전력망 구축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1961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권위주의 군사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공업화에 기반을 둔 수출전략을 선정했다. 공업화 과정은 안정적인 국가차원 전력공급을 요구했다. 전력건설 사업 추진을 위해 만들어진 담당주체가 1961년 만들어진 한국전력이다. 군부엘리트들은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을 위한 '자원' 동원 명령을 내렸고, 동원된 자원의 재분배는 군부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결합한 기술관료에 의해 전개됐다. 한국 자본주의 산업화를 위한 국가전력망 구축 과정은 이런 군사주의 방법을 통해 전개됐다."

-대규모 발전시설, 전력 송전설비 과정에서 '입지' 선정과 수용과정에서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은 어떤 식으로 강요됐나?

"국가는 입지 확보를 위해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강제 수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토지 강제수용구조는 주민들이 자신의 토지와 분리되면서 겪는 생활세계 파괴와 내적 변형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을 면제하는 형태로 구조화됐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국가는 토지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수단을 통해 투입되는 비용을 낮추려고 했다. 주민의 부를 국가의 부로 강제전환하고, 이를 자본 축적을 위한 하부구조로 재전환하는 과정을 국가의 조직화된 폭력을 동원해 주민에게 부등가교환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와 한전은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명분으로 '국익'을 내세웠다. 국책사업이니 주민들에게 양보하라고 했다.

"자신들이 선정한 특정장소를 '입지'로 전환하기 위한 절차들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장소'의 고유성은 사라진다. 장소 정체성은 인간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인데 입지는 단지 장소를 경제활동 가치라는 척도로 평가해 평면화한다. 장소가 입지로 전환하려면 장소를 자신의 생활세계로 만들어온 주민들의 삶으로부터 장소를 분리시켜내야만 하기 때문에 격렬한 갈등이 생긴다. 정부와 한전은 장소와 인간의 분리과정을 국가의 필수적인 필요의 충족이란 이름으로 진행해왔는데, 국책사업이 그것이다."

-밀양 할매·할배들은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했는데 국가가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면서 '새마을운동'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새마을운동은 주민들이 경험한 첫 번째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권위주의 정부 지도하 국민적인 근대화 운동으로 진행된 새마을운동에 '피와 땀과 눈물'을 바쳐 참여했다. 그런데 또 다른 국책사업인 국가 전력망 송전선로 사업으로 또 다른 '피와 땀과 눈물'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농촌재건이란 이름으로 주민을 동원하더니 이번엔 바로 그 '마을'을 파괴하는 방향에 주민을 동원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당해온 상황을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발독재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과 동일시돼 온 한국에서 전시동원체제와 개발독재체제는 모두 전쟁의 원리를 통한 전체사회의 재구조화를 동반했다. 밀양에 들어온 국가의 존재를 '전쟁'이란 상황정의를 통해 파악하는 밀양 주민들의 발언은 이런 구조 안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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