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이흥실 경남 FC 코치의 반성문

내년 10주년을 맞는 경남도민프로축구단(이하 경남 FC)이 창단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올해 2부 리그로 강등되자, 홍준표(경남도지사) 구단주는 기다렸다는 듯 "팀 해체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구단에 대한 특별감사까지 지시한 걸 보면 엄포용으로 던진 빈말은 아닌 듯싶다.

이런 가운데 마산공고 출신으로 경남 FC 창단에도 주요한 역할을 한 이흥실(54) 경남 코치가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 나섰다.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경남 FC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살피는 데 그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판단해 끈질기게 설득했다.

11일 오전 어렵게 경남도민일보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 코치의 이야기를 독백 형식으로 그대로 전한다.

지난 1월 고향 팀 경남 FC 유니폼을 입었다.

봉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다. 전에 있던 클럽보다 열악한 환경에 힘들었지만, 어린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것 자체가 흥겨웠다. 팀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다.

11일 오전 이흥실 경남 FC 코치가 경남도민일보 사무실을 찾아 경남의 코칭스태프로 올 시즌을 보낸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시즌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한 번 해보자는 선수들의 열의는 충만했고, 성적도 나름 괜찮았다. 신예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도 그맘때쯤 머릿속에서 지웠다.

하지만 전반기가 끝난 후 난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2군으로 내려갔다. 2승 6무 4패. 이차만 감독을 보좌해 내가 거둔 성적이다. 새로운 외국인 감독과 호흡을 맞추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갔다.

모든 게 나의 불찰이라 생각한다. 안종복 대표이사와 불화설이 터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수단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표이사와 함께 힘을 모아야 했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2부로 떨어진 데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통감한다. 구단주의 사표 지시가 내려왔을 때도 군말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금도 죄인이 된 심정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올해 우리 팀 문제가 뭐였을까 며칠간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구단의 정체성을 선수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11명의 선수가 하나의 팀으로 뭉치려면 명분 그 이상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선수들이 팀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승리와 성공,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필요했다. 경영진과 나를 비롯한 코치진은 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홍준표 구단주는 이를 두고 '리더십의 부재'라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넉넉지 않은 예산 탓에 수당이 연체되며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지 못했다. 어린 선수 위주로만 짜인 선발 라인업은 선수단 전체 사기에 영향을 끼쳤다.

팀에 대한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남을 응원하는 팬들과 홍 구단주에게 쓰는 나의 쓰라린 반성문이다.

나는 경남 FC 도민주주다. 2005년 500만 원이라는 돈을 내고 도민주 공모에 참여했다. 지역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경남에 프로축구단이 생기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경남의 성공을 응원했다. 감독 후보로 거론되던 내가 코치로 팀에 합류한 것도 고향 팀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주위 기대와 달리 경남은 피 말리는 1부 리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실패했다. 내년에는 아직 경남 도민들에겐 생소한 '챌린지리그'라는 낯선 무대에서 뛰어야 한다. 여기서 멈추거나 포기한다면 이제껏 땀과 열정으로 만든 '도민구단의 신화'는 영영 역사 속으로 묻힐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어느 부위가 잘못됐는지 진단하고 가장 좋은 치료제를 이용해 증세가 호전되도록 하면 된다. 홍 구단주가 지시한 '특별감사'는 병을 진단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병이 발견됐다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감사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면 이를 치료할 백신을 투여해야 한다.

경남은 어느 해보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고름을 깨끗이 짜내면 상처는 아물고 더 야무진 새살이 돋는 것처럼, 경남 FC가 이번 강등을 계기로 더 탄탄해져 10주년을 맞는 내년 화려하게 비상하길 주주의 한 사람으로서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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