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경실련 '2014 청소년 역사·문화 탐방' (1) 거제엔 왜 이렇게 성곽이 많을까

지역시민사회단체가 아이들과 더불어 지역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을 본격 시작했다. 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표 허철수)이 10월 18~19일(제1기)과 11월 15~16일(제2기) 1박2일 일정으로 두 차례에 걸쳐 '청소년 역사·문화 탐방'을 진행했다. 거제경실련은 그동안 해마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치러왔는데 지난해까지는 주로 '어린이 경제교실'을 운영했다.

주제는 제1기가 '거제에 남아 있는 성곽'이었고 제2기는 '거제·통영 일대 임진왜란 유적'이었다. 거제경실련이 이처럼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에서 초점을 '지역의 역사와 문화'로 맞춘 데는 학교 안팎에서 이뤄지는 교육 현실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담겨 있다.

알다시피 우리 청소년 교육은 대학 입학이 중심이다. 학교나 학원은 물론 가정에서도 대입수능시험에 나오는 것들만 가르치고 배운다.

'수능'은 전국적이거나 세계적인 것을 다룰 뿐 지역의 역사·문화·자연·생태·인물은 다루지 않는다.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가 터잡고 사는 지역을 잘 모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생겨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거제경실련은 거제시 지원금과 자체 기금에 참가비(한 차례 2만 원씩)를 받아 이번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거제뉴스광장과 경남도민일보가 후원했고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경남도민일보 자회사·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가 진행을 함께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시민단체들의 관심과 참여 촉진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이번 탐방을 다룬다. 임진왜란과 성곽에 대해 알아본 올해에 이어 내년에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과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 관련 유적 등 거제 일대에서 이뤄진 근대 역사·문화를 아우르는 일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스무곳 넘는 거제 성곽

10월 18일(토) 아침 10시 거제 초·중학생 20명 남짓이 거제시공공청사 회의실에 모였다. 거제 일대 성곽 둘러보기를 통해 지역 역사·문화를 알아가는 거제경실련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아이들이었다. 거제를 두고 땅이 너르고 물도 풍부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 수 있었다거나 풍경이 아름답지만 좁다란 해협으로 떨어진 섬이라 외로웠으며(유배) 육지와 바다가 만나지는 터전이라 괴롭기도(임진왜란·일제강점) 했던 지역이라는 전체 흐름을 익혔다. 성곽의 구조와 명칭·목적·방법 등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아울렀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문화재는 조금이나마 알고 마주할 때랑 모르면서 볼 때는 그 느낌과 재미가 크게 다르기에 마련된 시간이었다.

초점을 맞춘 짧은 설명에 이어 '도전! 골든벨' 게임 형식을 통해 배운 내용 복습까지 재미나게 마친 아이들은 가볍게 점심을 먹고 본격 성곽 탐방에 나섰다. 거제에는 대충 주워섬겨도 남아 있는 성곽이 스물을 넘는다. 영등포성·옥포성·조라포성·지세포성·율포성·오량성·아주현성·중금산성·탑포산성·수월리산성·율포산성·다대산성·장목산성·하청성·성포산성·사등성·가배량성·고현성(거제읍성)·둔덕기성(폐왕성), 그리고 왜군이 쌓은 견내량왜성·영등왜성·송진포왜성·장문포왜성….

이 모든 성을 둘러볼 수는 없는 노릇, 대표성과 상징성이 높은 몇몇을 골라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쌓은 옥산금성과 가야시대 거제에 있었던 독로국의 도읍으로 알려진 사등성과 한때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가배량(오아포)성 세 곳이 선택됐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가운데 하나인 진주성도 둘러보는 일정에 더해졌다.

1873년에 완공된 옥산금성에 오른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옥산금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쌓은 성이다. /해딴에

◇'통영'이 될뻔했던 거제

통영보다 거제에 먼저 통제영이 있었다는 사실은 거제 사람들한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오아포로 지금 동부면 가배리 일대 산마루를 따라 가배량성이 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처럼 거제가 '통영'이 될 뻔했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아이들과 더불어 언덕배기 마루금을 따라 올라가 많이 허물어지지 않은 가배량성을 눈에 담았다. 공격을 위해 불쑥 튀어나온 치(雉)도 보고 통제영 시절 군선으로 가득했을 앞바다도 내려다봤다.

1593년 초대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여기 오아포에 삼도수군통제영을 뒀다가 이듬해 8월부터 한산도 등지로 옮겨다녔으며 1597년 3월 이순신 대신 통제사가 된 원균은 통제영을 오아포로 다시 옮겼다. 원균이 칠천량에서 전사한 뒤 복귀한 이순신은 전세에 따라 전라도 고금도 등에 통제영을 설치했다. 오아포는 임진왜란 뒤 다시 통제영이 됐으나 1602년 5대 통제사 류형이 춘원포(통영 광도면 안정만)로, 6대 통제사 이경준은 다시 두룡포(지금 통제영 자리)로 옮겼다.

이어서 사등성을 찾았다. 민가나 논밭이랑 뒤섞여 있는데 한길에서는 돌담장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고즈넉함과 아늑함으로 푸근한 평지성이다. 치라든지 옹성 그리고 성문 따위가 제법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데가 많다. 원래 모습은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들녘과 마주한 성벽 거뭇거뭇한 색깔은 옛날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아이들은 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도 펼쳤다.

거제에서 가장 오래된 사등성을 둘러보는 아이들.

사등성을 둘러본 일행은 진주성으로 향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처절한 싸움이 두 차례 치러진 역사 현장이다. 1592년 10월 5~10일 첫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과 3800 군사가 3만 왜적을 물리쳤고 이듬해 1593년 6월 22~29일 두 번째 전투에서는 경상 우병사 최경회·창의사 김천일·진주목사 서예원·충청병사 황진 등 3000 관군과 백성이 10만 왜군을 맞아 죽음으로 지켜냈다.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은 시켰지만 스스로도 손실이 커서 전라도로 들지 못하고 물러났다. 왜군은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살륙했다.

진주성에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스스로 평가하는 모습.

일행은 촉석루·의기사·의암을 들른 뒤 성벽을 따라 전체를 한 바퀴 두른 다음 정문 공북문 바로 옆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일대에 퍼질러 가장 인상 깊은 하나를 골라 그림을 그렸다. 포근한 잔디밭이나 반듯한 계단 등에 앉아서 어떤 아이는 성벽을, 어떤 아이는 동상을 그렸으며 성문을 그림으로 옮기는 친구도 있었다. 다 그린 다음 아이들 스스로 평가해 잘 그린 그림을 몇몇 뽑은 다음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한 장씩 안겼다.

통영 도남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바로 옆 통영청소년수련관에 짐을 풀었다. 자기 소개를 겸한 소감 발표를 간단히 한 다음 이날 돌면서 듣고 보고 익힌 바를 되짚어봤다. 이 또한 설명하듯 하면 집중도 되지 않고 재미도 없으므로 '도전! 골든벨' 형식에 담았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만 재미도 있어하고 관심도 보인다. 아이들에게 던져지는 설명과 아이들 스스로 찾아나가는 문제풀이는 이렇듯 차이가 난다.

이튿날 아침을 먹은 뒤 거제면소재지 '기성관'을 찾았다. 거제현 객사로 조선 시대 임금 위패를 모셔두고 수령이 한 달에 두 차례 임금 받드는 의식을 꼬박꼬박 치른 데다. 임금을 대신해 내려오는 사신이 묵는 곳이기도 했는데 통영 세병관·밀양 영남루·진주 촉석루에 이어 경남서 네 번째로 큰 전통 목조건물이다. 거제가 옛적에도 작은 고을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물증이다.

거제현 관아의 중심 건물인 기성관 앞에서 아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어 근대문화재 거제초교 본관을 눈에 담으면서 옥산금성에 올랐다. 이 산성은 1873년 완공됐다. 근대 화포 제작기술이 발달해 전통 산성이 이미 효력을 잃은 시점이었다. 거제부사 송희승이 관아 읍성을 쌓겠다고 하자 고종은 백성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못하게 했다. 그러자 송희승은 대신 산성을 쌓기로 하고 백성을 동원해 여덟 달만에 다 쌓았으나 그 탓에 파직되고 말았다. 산마루에 서면 크고작은 바위들이 잘 어우러져 있고 올려다보이는 계룡산과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두루 괜찮다. 또한 아래 마을에서 산성을 바라보는 풍경도 퍽 그럴듯하다. 아이들은 여기서 노닐다가 기념사진까지 찍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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