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번뇌하는 한낱 인간일 뿐

인간이 신처럼 군림하던 시대, 모세스(크리스천 베일)와 람세스(조엘 에저튼)는 이집트 왕국에서 형제처럼 자란다.

다혈질의 람세스와 달리 이성적인 모세스는 왕을 비롯해 모두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람세스는 모세스가 이집트인이 아닌 노예로 부려지는 히브리인임을 알게 되고, 모세스를 유배 보낸다.

혹독한 시기를 거쳐 유배지에서 평화롭게 살던 모세스는 어느 날 동포들을 해방시키라는 신의 계시를 받게 된다.

결국 모세스는 스스로 신이라 믿는 제국의 왕 람세스에 맞서 히브리인 노예들과 함께 이집트를 떠날 전쟁을 시작한다.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 연출만으로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주목받기 충분하다. 웅장하고 빼어난 연출을 보여왔던 감독이기에 기대감 또한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감독은 충실히 구약성서의 출애굽기(Exodus)를 재현해 냈다. 딱히 성경을 읽지 않았더라도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기적까지 내용은 그동안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한번쯤 접했던 내용이다.

이미 스포일러가 노출된 상황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떤 매력을 담아내려 했을까.

종교적 색채를 흐릿하게 만들면서도 신(또는 자연적 재앙)에 맞서는 인간의 무력감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고대 이집트의 모습에 분노한 신이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10가지 재앙과 관련한 특수효과는, 스콧 감독에게 기대했음 직한 치열한 전투 장면을 대신할 만큼 공을 들였다.

'신들과 왕들'이라는 부제와 달리 람세스와 모세스는 감히 신에게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과 갈등하는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올 초 개봉한 에로노프스키 감독의 <노아>가 신의 뜻에 맞서고 신과 갈등을 다루면서 인간의 본성에 집중했다면 <엑소더스>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신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

결국 히브리인이 이집트를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신의 경고 덕분이고, 홍해를 갈라 람세스를 비롯한 이집트 군대를 몰락시킨 것 역시 신의 영역이다.

영화 엔딩 부분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12년 세상을 떠난 동생 토니 스콧을 추모했다.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독보적 경지는 거장의 힘을 느끼게 하지만 히브리인들을 구원할 모세마저 영웅이기보다는 번뇌하고 고민하는 한낱 인간으로 그려낸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70살을 훌쩍 넘긴 거장은 동생의 죽음 앞에 결국 신의 뜻을 거스를 순 없더라는 소회를 풀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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